지난 2월 16일은 월요일이었다. 주말을 보낸 사람들이 출근과 등교를 하며 졸린 눈을 비비던 평범한 일주일의 시작. 그러나 70년 전 그날, 일본의 어느 감옥에서는 피 대신 바닷물로 몸이 채워진 한 남자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았지만 끝까지 조국과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했던 시인 윤동주다. ‘연희단거리패’의 창작 뮤지컬 <서시>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했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고요한 감옥 속, 한 과학자와 간호사 ‘요코’가 병실에 누워있는 윤동주를 보며 서 있다. 과학자는 바닷물이 인간의 피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요코에게 ‘인간은 호기심을 키워야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실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과학자가 퇴장하고, 요코는 누워있는 윤동주의 몸 속에 바닷물을 넣으며 그가 쓴 시를 발견한다. 요코가 시를 천천히 읽자 무대 위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뮤지컬은 윤동주의 시 <소년>을 시작으로 <조개껍데기>, <봄>을 노래하며 시인의 과거를 보여준다. 시 <자화상>을 통해 그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송몽규를 보고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며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를 통해 윤동주의 과거를 알아가던 요코는 점차 그를 연민하게 된다.
  가혹한 생체실험은 점차 윤동주의 몸과 정신을 앗아갔다. 그는 계속해서 고열에 시달렸고 잠에서 깨면 환각을 보며 혼자 이야기했다. 그러나 윤동주를 실험하는 과학자는 여전히 냉정했다. 수치화될 수 없는 환각은 그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열이 점차 심해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예측과 다른 결과에 짜증을 낼 뿐이다. 윤동주는 실험의 부작용으로 기억까지 잃어간다. 잠깐동안의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라고 생각한다. 요코에게 자신의 병명을 묻던 그는 바람을 쐬고 싶다고 부탁한다. 그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는 요코는 윤동주에게 눈을 감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잠깐의 산책을 나선다. 병원 뒤뜰로 산책하러 간 그들에게 또다시 노래가 들려온다.  
  작품은 윤동주의 <서시>를 노래하며 마무리된다. 윤동주의 시 한 편마다 음을 붙여 배우들이 노래한다. 그들의 노래는 실제 시를 읽는 것보다 윤동주가 지내왔던 과거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 노래를 부르며 바닥에 그리는 그림도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뮤지컬 <서시>는 윤동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나 민족시인으로서의 업적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모습에 초점을 맞춰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극 중 우리의 몸 속에 흐르는 피는 우리가 지닌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윤동주의 몸은 피 대신 바닷물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그는 정체성을 잃은 것일까? 그는 끝까지 ‘나는 누구인가’를 외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바닷물을 토해내며 자신의 몸 속에 남은 마지막 피 한방울을 살리려 노력한다. 작품을 연출한 이채경 연출가는 “최근 학생들이나 청년을 보면 자신의 꿈만 좇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작품의 취지를 밝혔다. 

  고향인 적 없었던 조국을 그리워한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 <서시>는 다음달 10일까지 한결아트홀(구 가마골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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