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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흐름에 따라 빛바래온 ‘학문의 전당’
  • 김민관 기자
  • 승인 2015.03.29 03:12
  • 호수 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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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한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대학의 의미다. 이처럼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을 본연의 목표로 삼고 있다. 대학을 ‘학문의 전당’이라 칭하는 것 역시 동일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대학들이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고 ‘직업학교’로 전락해 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학문의 자유를 위해 탄생하고 싸워오다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적인 형태의 대학은 자유로운 학문의 공동체를 지향했다. 김준수(철학) 교수는 “국가와 교회로부터 독립된 학문연구공간을 만드는 것이 당시 대학의 목표”라며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비판적인 연구를 위해 권력과 싸워온 것이 대학의 역사”라고 전했다.
이는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방 이후 ‘자유’, ‘정의’, ‘진리’, ‘봉사’ 등을 건학이념으로 삼은 대학들이 설립됐다. 대학은 한국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이자 연구기관이었고 학문연구에도 충실하고자 했다. 임상택(고고학) 교수는 “취업에만 목을 매는 지금에 비해 전반적으로 학문에 집중하고자 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대학을 가리키는 ‘상아탑’이라는 단어 역시 대학이 세속의 이익이나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 학문의 전당임을 상징하는 의미였다.
이 시기에는 대학의 문도 넓지 않았다. 대학진학률이 1970년엔 26.9%, 1980년엔 27.2%로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니었다. 때문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은 사회에 진출할 때 이점으로 작용했다. 임상택 교수는 “당시에는 고졸자들의 진로가 매우 한정돼있었다”라며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사회 진출에 유리했다”고 말했다. 

 

대학, 변해버린 현실과 마주하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들어 대학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대학에 본격적으로 시장논리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고등교육의 대중화도 이뤄진 것이다. 지난 1995년부터 시행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그 신호탄이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대학 설립을 위한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자유로운 대학의 설립을 가능하게 했다. 더불어 대학이 비교적 자유롭게 정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정책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드러났다. 1990년 107개였던 일반대학의 숫자는 2000년 161개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대학진학률 역시 33.2%에서 68%로 급등했다. 대학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도 잇따랐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임재홍(방송통신대 법학) 부위원장은 “대학의 입학정원이 지나치게 늘어나 고등교육의 공급과잉이 발생했다”며 "또 대학설립이 하나의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부실대학의 양산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원인은 IMF 사태였다. 지난 1997년 닥친 IMF 사태는 사회의 구조를 바꿔버렸다.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 김삼호 연구원은 “IMF 사태로 인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대학생들의 사회 진출이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더 이상 과거처럼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증해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설립 자유화로 대학생의 수는 급증한 반면 사회로 진출할 통로는 좁아졌기 때문이다.
또 IMF 사태를 거치며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경쟁’, ‘효율’ 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경쟁에서 패배한 것은 도태돼야 한다는 시장논리가 강세를 보였다. 대학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삼호 연구원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평가와 경쟁이 일반적인 일이 됐다”라고 말했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대학생들끼리, 교수들끼리, 대학들끼리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든 기초학문의 중요성은 서서히 낮아졌다.

 

현실에 발맞춰 변화를 택하다


오늘날의 대학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변화했던 구조가 고착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대학생들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지위가 달라졌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은 인적자본 일등 국가인가?: 교육거품의 형성과 노동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고졸자 평균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대졸자의 비율은 3%대였다. 하지만 2011년에는 이 비율이 23%까지 늘어났다. 대학 졸업자가 갖는 노동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차차 약화된 것이다. 임재홍 부위원장은 “고등교육이 보편화 되면서 대학생의 특권은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졸업생들이 사회의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대학에서 취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이에 우리학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학이 취업지원을 주 기능으로 하는 기구들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구를 중심으로 학교에서 취업 박람회나 설명회를 여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지만 대학이 취업에 중점을 두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교연은 <전대신문>에 기고한 논평에서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이 자본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졸업생 취업률 상승에만 매달리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라며 “졸업생들의 취업은 대학이 아닌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이 취업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기초학문이 등한시된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실에서 발표한 ‘2003년 대비 2013년 대학 계열별 학과 수 및 입학정원 변동 현황’에 따르면,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의 입학정원은 각각 4.7%, 4.1% 감소한 반면 경영·경제 계열의 입학정원은 9.7% 증가했다. 대학이 속칭 ‘돈 되는 학문’에만 투자한다는 지적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변화를 정부가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가 기초학문 보호보다는 기업에 효율적으로 인력을 제공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일례로 교육부의 대학평가체제는 주요 평가지표로 ‘취업률’을 상정하고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심현덕 간사는 “교육부가 대학들이 인문사회분야를 축소하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동표(역사교육) 교수 역시 “정부는 기초학문에 대한 보호보다는 실효성만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문 공동체의 기능 회복해야”


이 같은 대학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이 학문연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준수 교수는 “대학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며 “대학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구성원들의 책임의식도 희박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이 학문의 공동체로 기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심현덕 간사는 “현 상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셈”이라며 “소위 돈 되는 사업도 기초학문이 바탕이 되어야 발전이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정출헌(한문) 교수 역시 “진리의 상아탑으로서의 역할, 교양 있는 사회인을 육성하는 역할, 지역사회와의 연계하고 소통하는 역할, 무엇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정책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임상택 교수는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같은 기초학문의 육성을 위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재홍 부위원장 역시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처럼 대학에 대한 정부지원을 확대하면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민관 기자  left04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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