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이 말은 초강대국 사이에서 고생해 온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경험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중 G2 시기에 한국은 과거와 같이 새우등 터진 신세가 된 것일까? 지정학적 데자뷰인가?

  한국은 개도국도 약소국도 아니다. 한국은 중견국이자 강소국이다. 한국은 2014년 GDP 규모 세계 13위 국가이며, 무역규모 세계 7-8위 국가이다. 또한 한국은 2013년 군사비 지출 세계 10위 국가이며, 2015년 세계 7위의 군사력을 지닌 국가이다. 그런데 이런 국력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국 주변 4강이 우리를 강자가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약소국으로 인식되는 상황과 중견국/강소국 한국의 국민 상당수가 자국을 약소국/개도국으로 인식하고 수동적인 외교안보정책을 희망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우리가 주변 4강의 국력에 크게 영향 받는 국력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않고, 우리 정부에게 자율적인 중견국/강소국 외교정책만을 요구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이외에도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반도는 19세기 이후 주변 4강이 서로 지역패권경쟁을 벌여온 각축장이다. 역사적으로 예견하면, 현재의 미중 패권전이과정은 한반도에서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이자 미래라는 것이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이나 강소국이 초강대국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며 자국의 국익을 독자적으로 추구하기는 어렵다. 셋째, 미중 패권대결은 초강대국 간의 위엄과 자존심 대결이다. 그런데 이런 대결은 쉽게 단기간에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넷째, 냉전 시기와 미국단일패권 시기, 그리고 G2 시기에 한국은 ‘동맹’과 ‘연루’ 그리고 ‘동맹파기’의 딜레마에 항시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연루는 동맹국 중 강대국의 국익과 약소국의 국익이 서로 다를 경우, 그리고 약소국이 동맹국인 강대국의 국익을 추종하기도 어렵고 자국의 국익을 독자적으로 추구하기도 어려운 딜레마 상황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제 편입과 사드 배치문제, 그리고 중국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권유라는 연루 상황에 놓여 있다. 약소국이 연루상황에서 강대국의 국익을 거스를 경우 강대국은 ‘동맹파기’를 선언할 가능성이 발생하며, 약소국은 힘 있는 동맹국을 잃을 가능성을 떠안게 된다.
  물론 21세기 한국은 미중이 자국의 국익을 일방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그런 수동적인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연루상황을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타파하기도 쉽지 않다. 누구는 한국이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은 미중 간 적나라한 힘의 대결 앞에 허약하기 그지없는 희망적 선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중 연루된 한국이 미중 양국으로부터 모두 얻는 게임을 하기는 앞으로 상당 기간 불가능하다. 대신 이중연루 상황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 상황에서 솔로몬의 지혜는 사드 도입 불가, AIIB 참가이다. 일방적인 친미나 친중은 향후 한국 외교에서 큰 비용을 불러오는 근본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사드배치는 일방적인 친미로 중국에게 인식되지만, 한국의 AIIB 참여는 미국에게 일방적인 친중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미국의 동맹국 다수가 AIIB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G2 시기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긴장하고 신중한 것일수록 좋다. 이런 외교가 설익은 자존심 외교나 자기비하 외교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자국민의 자유와 안전보장 그리고 부국강병이라는 국익 추구에 있다. 그리고 국가는 이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맹과 세력균형이라는 수단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목적보다 수단을 우선시하는 것은 이성적인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사드 배치와 미사일방어 체제는 우리의 안보를 강화시켜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 간 그리고 동북아국가 간 군비경쟁과 전쟁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MD는 ‘방어’라는 말 대신 실제적으로는 공격적인 무기체계이다. MD는 적의 핵억제력을 무력화하고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양자택일 외교는 곤란하다. 그리고 미중 양국 모두로부터 얻는 게임을 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한국 외교의 오판이자 환상이다. 한국은 미중 경쟁이 야기한 어렵고 복잡한 이중 연루상황에 고통스럽지만 익숙해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신중하게 미중 간 힘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그때그때 양국의 힘의 배분상황을 잘 활용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이 미중에 대한 이중연루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 대안은 남북 간 평화건설이다. 북핵이 한반도에서 미중패권경쟁을 촉발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진시원 일반사회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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