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목민족이 살았던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CIS국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과거 구소련의 문화와 유목민족 고유의 전통문화가 섞여있다. 언어 또한 러시아어와 카자흐스탄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이 나라는 동양인, 유럽인, 그들의 혼혈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나라는 유목 민족답게, 고기와 치즈를 비롯한 각종 유제품을 주식으로 하며, 소련의 문화에서 흘러온 것 같은 빵류를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


  우리 학과 사람들과 약 한 달 동안 다녔던 학교는 카자흐스탄 국립 대학교, 줄여서 카즈구라고 불리는데 그곳의 국제학부에서 러시아어와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지리학적 특징 등을 배웠다. 우리학교의 언어교육원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들은 학습의 효율을 높이려고 우리를 1,2,3반 이렇게 세 반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우리는 반의 숫자가 수준별 등급을 나타낸다며 서로 꼴찌반이니 일등 반이니 틈만 나면 서로 싸우곤 했다. 다행히 운이 좋게 1반에 들어갔던 나는 동기들 앞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그러나 조용하게 ‘공부 못하는 것들은 기술이나 배워라’ 한마디로 그들을 평정하곤 했다.


  그렇게 반 편성을 마치고 우리는 곧바로 다음 날부터 수업에 들어갔다. 우리는 무슨 다음 날부터 바로 수업을 하냐며 거칠게 항의하자 했지만, 정작 교수님께서 들어오시자 우리들은 모두가 정말 한결같게도 조용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처음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생각은, 우리 원어민 교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정말 느리게 말씀해 주셨다는 것이었다. 너무 빠른 속도에 우리는 멀뚱멀뚱 교수님만 쳐다보았으며, 간혹 이해할 수 있다는 듯한 행동을 하는 녀석들을 부러움 혹은 ‘쟤도 못 알아들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러시아어 발음과 속도는 완전 다른 것이었다. 처음 며칠간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표현들마저도 교수님께서 못 알아 들으셨을 정도로 우리는 발음과 억양이 엉망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대충 알아듣겠지’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는 의외로 큰 충격이었다. 순식간에 우리는 상대방의 말도 못 알아듣고, 우리가 말해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한 것이라고는 교수님의 말을 알아듣기 보다는, 이미 유학을 갔다 온 선배나 현지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는 친구로부터 통역을 받아서 수업을 듣는 것이 다였다. 그래서 사실 처음엔 학교 가기도 싫었고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재빨리 그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지에 이미 적응하기 시작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라고 동기부여를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러시아 문법과 문화,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과목을 수강했다. 좌절과 희망이 희미하게 겹치며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교수님의 언어를 이해하고,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서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조금씩 들려오는 낯익은 단어와 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문장의 뜻을 새겨보며 학교에 대한 흥미는 물론 러시아어에 대한 더 강한 열망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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