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었다.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외국어로 쓰여 해석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특별한 기교도 과장도 없이, 어떤 일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과 경험담을 풀어낸 책이었다. 그럼에도 책들은 한동안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표지와 목차를 몇 번이나 훑어보면서도 책장을 넘겨 본문을 읽는 일에는 이상하리만치 어떠한 결심 내지 용기가 필요했다. 모두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와 관련된 책들- △<우리는 모두 세월호였다>(실천문학)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금요일에 돌아오렴> (창비)이었다.

  책을 앞에 두고 떠올려 보았다. 작년, 그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4시간 연강을 하느라 뉴스를 볼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편의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고, 집에 와서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서야 TV를 틀었고 뉴스를 보았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과 일반인을 태운 배가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했다는 소식이었다. ‘전원구조’라는 뉴스가 나왔지만 오보였고, 그때까지 구조된 이들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진도체육관으로, 팽목항으로 뛰어가는 부모들의 모습이 연달아 나왔다. 배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탑승자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린다 하니, 시간이 조금 지체되더라도 구조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자력으로 세월호에서 ‘탈출’한 이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내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어느 곳에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그 결과 어린 학생들이 죽어갔다. 그 상황을 차마 볼 수 없어 텔레비전을 껐지만, 그렇다고 벌어진 일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소설가 박민규는 세월호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 말한다. 사고가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라면, 사건은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 하에 발생하는 일,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과 연계해보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사고’이지만,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것은 ‘사건’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별개의 사안이며, 후자가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세월호 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 그 후로 일 년이 흘렀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서 명확한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무수히 많은 ‘말’들이 쏟아졌지만, ‘말’과 ‘말’이 서로를 물고 뜯으며 싸우다 끝내는 얼음처럼 부서져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172번인가 174번인가로 건우가 나왔어요”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집이다.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는 건우의 시신이 발견된 것을 “건우가 나왔어요” 라고 표현한다. 건우 어머니뿐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한 열 세 명의 유가족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의 주검을 앞에 두고도 차마 시신이라 말할 수 없는 부모들은 아이가 바다 속에서 ‘나왔다’, 아이가 우리 앞에 ‘왔다’라고 말한다. 단어 하나조차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 본다. 그리고 상상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기에 마음이 더 아려온다. 
  ‘금요일’은 수학여행 갔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일 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9명의 실종자가 남았다. 이 책들이 널리 읽혀지길 바란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들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유가족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동참했으면 한다. 단원고 학생들을 ‘기억’하겠다는 말로 유가족을 위로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월호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오선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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