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비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저 환절기마다 코를 훌쩍거리고 재채기를 연신 해댈 수밖에. 코가 막혀 냄새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하던 초등학생 때의 어느 봄날, 아빠 회사로 놀러간 적이 있었다. 페인트 묻은 작업복을 입은 아빠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런데 안기자마자 막힌 코를 단번에 뚫을 냄새가 났다. 코가 시릴 정도로 고약한 페인트 냄새였다. 

  날마다 아빠의 머리에는 흰 페인트가 묻어갔다. 커가면서 아빠의 페인트 냄새를 핑계로 내 방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빠는 매일 페인트 냄새를 집으로 들고 왔고, 나를 의식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달려가는 것이 버릇이 됐다. 스치기만 해도 물큰한 그 냄새에 머리가 아파오지만 아빠는 그 냄새를 어떻게 참아온 것일까.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방안에서 혼자 생각하곤 했다. 
  공장의 냄새가 집 안으로 스며들어간 것은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한해, 부산시 악취 관련 민원은 총 350건에 이른다. 사상구는 특히 악취 문제가 더 심각했다. 공업단지 바로 옆에 주거단지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풍이 불면 바람을 타고 공장의 악취가 아파트로 유입돼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른다. 
  부산시는 사상구 악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공장을 강서구의 녹산공단으로 이전시켰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었다. 시 당국은 냄새나는 곳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안 나게’ 처리했어야 했다. 공장 인근 지역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악취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사상공단에서 일하며 살아온 노동자들에게는 발언권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공장 내부적으로 냄새를 정화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들은 여전히 악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상구 주민 일부는 ‘그래도 예전보다는 악취가 덜 난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악취문제를 줄인 것은 부산시와 사상구 등 지자체가 아니라 시민들이었다. 시민단체 ‘학장천 살리기’의 강미애 대표를 선두로, 뜻있는 시민들의 행동의 결과인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고 노동자들의 아내와 부모였다. 그들의 노력마저 없었으면 사상구는 여전히 ‘악취시티’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작 책임주체인 지자체는 나서지 않았다. 사상구청에서는 오히려 시민들의 희망을 꺾기도 했다. 처음 강미애 대표가 사상구의 악취문제를 해결하려 구청에게 도움을 구했을 때, 사상구청은 “이게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진작 해결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행동으로 사상구청의 악취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는 양상을 보이자 지자체의 태도는 달라졌다. 지난 1월, 뒤늦게 ‘악취배출시설 지정?고시’ 조례안을 내놓는 등, 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도 내놓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들을 무시하고 있는 지자체. 의심컨대, 그들이 만성비염에 걸렸다는 것은 아닐까?코가 막혀 문제를 인식할 수 없었기에 문제해결조차 못한 것이라고. 참, 기가 막힌 노릇이다.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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