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인터넷을 타고 퍼진 하나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꿔놓았다. 브라질의 기계공 ‘알프레드 모저’ 씨가 만든 ‘페트병 전구’가 바로 그것이다. 페트병에 물과 표백제를 넣고 지붕 사이에 설치하면 집 안까지 환하게 밝힐 수 있다. 태양광이 페트병 속의 물을 통과하면서 빛이 굴절되고, 표백제 속 형광증백제가 빛의 확산을 도와 반사시키는 원리다. ‘모저 램프’라고 불리는 이 전구는 55와트의 빛으로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전 세계 100만 명에게 희망을 주었다.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따뜻한 기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적정기술’. ‘적정기술’이란 사회 공동체의 정치·문화·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기술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지난 1965년 유네스코 회의에서 처음 제안해 올해 50돌을 맞이한 이 기술은 소외계층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효과적인 기술인 동시에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기술로 꼽힌다.
  적정기술은 슈마허가 자신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안한 ‘중간기술’이라는 개념을 기초로 한다. 이 책에서 그는 ‘대량생산기술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한다’고 지적하면서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잘 활용해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을 소개했다. 저자는 이것이 거대 기술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기술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인간 소외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땀 흘리는 노동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이라 불렀다. 이후 ‘중간’이라는 말이 자칫 첨단 기술에 비해 열등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여론이 있어 ‘적정기술’이라는 명칭을 많이 쓰게 됐다.
  초기의 적정기술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과학기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모임들과 비정부기구, 협동조합 등이 생겨나면서 민간 차원에서 적정기술에 대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충청남도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적정기술 확산 사업을 추진하는 등 관 차원의 지원이 계속되는 중이다. 
  여러 방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적정기술. 하지만 현재까지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먼저, ‘적정기술은 기술적 측면이 가장 중요하다’는 편견이 큰 방해요소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이택근 연구원은 “진정한 적정기술은 기술적인 요소보다 해당 국가의 경제, 정치, 법 등 여러 문제를 다방면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야만 기술이 지속성을 가지고 그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국가마다 소득 수준, 환경, 문화 등에 따른 차이가 크다는 점 역시 적정기술의 발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해도 지역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택근 연구원은 “타겟이 되는 층이 많고 문제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힘들다”며 “최근 각광받고 있는 기술들도 개별적인 마을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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