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한 지 올해로 3년차다. 이제는 입학보다 졸업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한 해 한 해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깊어져만 가는 고민이 있다.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누구나 가질만한 고민이다. 바로 취업이다.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문득 ‘취업’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을 은근하게 누른다.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생 때에는 그토록 선명했던 장래희망이 이젠 그 불씨만 아슬아슬하게 살아있다. ‘어디라도 좋으니 취업만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커지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까’하는 속편한 상상도 해본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졸업’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취업을 하지 못한 상태로 졸업을 해버리면 ‘학생’이라는 신분이 ‘백수’로 바뀌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취재를 하며 만난 한 학생은 “학생들이 학교를 쉬는 동안 취업을 위해 여러 활동을 하며 노력하는데, 기업에서는 결과가 없으면 그 노력마저 무시한다”고 토로했다.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졸업예정자와 졸업자간의 유불리가 없다고 주장해도 학생들의 불안함을 없애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이제 대학생활은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폭탄이 터지는 ‘스피드 게임’처럼 변해간다. ‘졸업’이라는 폭탄이 터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점수를 내야 한다. 폭탄의 심지가 다 타서 사라질 듯 말 듯 한 상황에 닥친 이들은 이 게임에서 ‘졸업유예’라는 아이템을 사용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 ‘졸업유예’ 아이템을 사용하기가 꽤 까다로워지고 있는 모양이다. 교육부가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적은 대학일수록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학교를 떠나지 않는 졸업유예생들은 대학본부의 입장에서 걸림돌이 된 것이다. 졸업유예생들이 학내 시설을 계속 이용하면서 발생하는 행정적 비용에 대해서도 대학들은 난색을 표한다. 이에 몇몇 대학들은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미 학점을 모두 이수한 이들에게 추가 학점을 더 듣도록 강요하거나 산정 기준을 알 수 없는 금액을 등록비로 요구하는 대학도 있다. 취업에만 전념하기에도 부족한 학생들에겐 가혹한 현실이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제도라지만 ‘줬다 뺐는’ 꼴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다. 학생을 위해 시행했던 제도의 기준을 학교 입맛에 따라 이래저래 바꾸는 것이 옳은 일일까. 졸업유예제를 도입하면서 대학들이 내세웠던 취지를 생각해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의 압박 속에서도 졸업유예생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제 학생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문제다. 이들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NG족‘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No Graduation’을 줄인 말이지만 말 그대로 NG를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학교의 압박 외에도 NG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하루 종일 도서관 자리를 차지한다는 후배들의 눈치도 마냥 무시하고 있기에는 신경 쓰인다. 사회로 나가기 싫어서 학교에 남아있는 것이겠는가. 오히려 가장 사회로 발을 내딛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이들이지 않을까. 학사모를 쓰는 대신 학교에 조금 더 남아있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이들이 겪었던 고민들은 가볍게 생각할만한 것이 아니다.
김유진 기자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