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첫 주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 통과 여부였다. 2005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됐던 어린이집 CCTV 설치 입법화 시도는 이번에도 국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로서 최근에 보도된 여러 사건에 신경이 곤두선다. 입법을 찬성하는 쪽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CCTV를 활용한 감시 체제가 피감시자인 보육교사의 정상적인 교육과 자발적인 규율 준수로 이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얻는 사회적 이익이 인권 제약 등 불가피한 손해보다 더 크다면 결과적으로 사회에 좋은 것 아닐까? 200여 년 전 이런 생각을 갖고 실제로 감시 시설을 설계한 다음 그것을 법제화하여 사회 여러 부분에 확대하자고 의회에 제안한 인물이 있다. 1700년대와 1800년대에 걸쳐 전 생애를 법률과 제도 개선에 매진했던 공리주의 사상가 제러미 벤담이다. 벤담은 객관적이며 정교한 법률과 제도가 느슨하고 주관적인 도덕과 윤리를 대체하기를 바랐던 인물로서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감시 시스템이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고통의 총량은 줄여주고 행복의 총량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조지 오웰이 지은 <1984>에는 이런 구절이 자주 나온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 빅브라더가 감시자로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인데 벤담이 착안한 중앙 감시의 기본 원리가 잘 표현돼 있다. 벤담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발휘하는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회를 교화하고자 했다. 1791년에 이론적인 체계를 완성한 뒤 영국 의회와 프랑스 의회에 제안하여 두 나라에서 모두 실현 직전까지 갔다가 막판에 좌절된 기획이 ‘파놉티콘(panopticon, 한눈에 본다는 뜻)’ 감옥 시설이다. 파놉티콘은 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세워진 원형 감옥으로서 수감자에게는 감시자인 간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감시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는데도 수감자들은 여전히 감시당하는 느낌이 유지되므로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다. 감시 비용은 크게 줄지만 감시 효과는 줄어들지 않는다. 파놉티콘이 바로 제도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감시 원리는 근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현대의 권력 주체들이 개인 식별 자료나 생체 정보 수집에 몰두하여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것을 파놉티콘 원리와 연관 지어 설명했다. 
  중학생이던 1987년에 나는 파놉티콘을 처음 경험했다. 학교에 신형 스피커가 설치된 직후였는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담임교사의 음성에 대고 한 학생이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마이크 기능이 포함된 신형 스피커의 위력 덕에 그 학생은 바로 교무실로 소환됐고 우리는 잠시 공포에 휩싸였다. 교무실에서는 이따금 스피커 전원을 켜서 학급의 상태를 확인하였으나 그게 언제일지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교실이 전에 비해 썩 조용해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학생이 커다란 목소리로 대놓고 교사를 욕하는 일은 자취를 감추었다. 벤담이 주장했던 피감시자의 자발적인 통제와 규율 준수가 이것이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과속감시카메라 중 상당수는 작동이 안 되고 껍데기만 있는 가짜인데 운전자들은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알 길이 없으므로 카메라가 보이면 일단 속도를 줄이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도 파놉티콘 원리가 적용된다. 피감시자가 감시자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감시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방범용 CCTV 모형이 많이 팔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인터넷 매체에 글이나 자료를 올렸다가 추후에 문제가 될 것 같아 30분 뒤에 지웠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 해도 이미 열람한 이들이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청소년 대상 강연에서 “여러분이 학창 시절에­­ 재미로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이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발목을 잡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조언한 적 있다. 인터넷 역시 파놉티콘 원리가 적용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점을 잊으면 때로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감시 시스템이 확충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에 무감각해지는 시민도 많아진다는 점은 벤담이 창안한 파놉티콘의 영향 범위를 벗어난 기현상 같다. 비밀을 보호하는 방법 중 최선은 비밀을 만들지 않는 일이듯, 감시가 초래할 문제를 방지하는 최선은 감시하지 않는 풍토를 사회 기본값으로 정하는 일이다. 도이칠란트 우화인 <마법사의 제자>에는 주문을 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주문을 거는 법만 겨우 터득한 얼치기 수련생의 실수담이 나오는데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전개 양상도 그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푸는 법을 미리 고려하지 않고 법제화라는 매듭을 무작정 동여매선 안 된다. 

이강룡 역사 전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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