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로서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1년 늦은 시작이지만, 그만큼 1년의 방황시기를 더 겪었으므로 더 성숙한 모습으로 그 시작을 헤쳐나가리라 믿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정형화된 학창시절을 지나 21살에서야 처음으로 주어진 삶에 대한 선택권과 자유가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다 감수해야 함을 알기에 더 그랬다. 대한민국의 혹독한 입시경쟁 속에서 시험 하나하나를 그저 눈앞에 닥친 산 문턱 하나하나를 겨우 넘기듯 지나온 학창시절, 나는 삶에 대해서 그리 깊은 질문을 던져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20살에서야 시작된 스스로에 대한 물음은 혼란과 방황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그 물음 속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잠시나마 마음을 기대어보는 곳이 있다. 바로 그림이다. 나는 예술에 관심이 많다. 음악이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특히 요즘은 그림에 빠져있다. 처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였다. 그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그녀의 상처가, 그 지독한 고통이 나에게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프리다의 얼굴을 한 사슴에 꽃힌 화살들과 핏방울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씁쓸한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영혼이, 삶의 상처가 그림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보고 있자면 프라다의 영혼을 잠시나마 마주친 느낌이었다. 
 이렇듯 예술 작품은 나에게 새로운 영혼, 다른 이의 삶과의 만남을 전해준다. 그리고 때로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예술이었다. 삶을 변화시킨 것은 창조였다. …그 창조의 맨 앞에 예술이 있다. 울컥하게 만드는 노래 하나, 그림 하나, 시 하나가 사람을 변화시킨다.”
 -<너는 가슴을 따라 살고 있는가>중에서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분명 나 자신을 변화시킨 예술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거야” 하고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신선한 충격을 느낄 때, 때로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서, 혹은 분노감에 싸여 가슴이 빠르게 뛰며, 손이 떨리기 시작할 때, 그 영화 한 장면이, 그리고 그 음악 한 줄이 내 생각에, 내 행동에 큰 변화를 줄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게 내가 보지 못한 세계, 문제, 가치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보여주고 있을 때 그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술과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사실 나를 변화시킨 것들 중 가장 큰 것은, 한 사람의 삶 전체였고,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그의 신념이자,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대다수의 독자들도, 자신의 인생의 스케치를 해야 할 순간을 맞이했다. 스케치가 그림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인 것처럼 그 신념, 가치 또한 앞으로 삶을 그려낼 가장 중요한 고민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예술 작품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내 삶’이라는 하나의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내 삶이 시간에 의해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끊임없이 창조시키고, 변모시키는 것임을 기억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김유진(언어정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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