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어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사는 세상 자체가 다르다고 합디다. 대중교통은 이용할 일이 없고, 손수 장 볼 일도 없고, 아무 데서나 뭘 사 먹거나 노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쇼핑도 그런 고객들만을 위해 엄선한 상품들이 제대로 갖춰진, 잘 관리되는 곳에서만 하거나 대신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요. 그러니 일반 사람들과는 섞일 일이 아예 없는 겁니다. 그런 집에서 태어났다면 상당 부분 앞으로의 삶의 여정이 미리 결정된다고는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그런 별도의 삶의 순도를 유지하기 위해 생애 전 과정에 걸쳐 꼼꼼하게 정성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다니는 학교, 어울리는 무리, 취미, 직업, 무엇보다 결혼에 있어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재생산해 나가는 데 부단히 신경을 쓰는 것이지요.
  도대체 누가 그리 사느냐고요? 글쎄,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야 잘 알 길이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재벌이나 부자들이 우선 그러하며, 고위 관료나 명성이 자자한 법률가 등 대대로 이른바 요직을 맡아 온 집안의 사람들도 그런가 보더군요. 그러고 보면, 25년 이상 된 얘기이긴 하지만 예전에 대학 다닐 때 동기들 중에도 다른 애들과는 달리 어쩐지 귀티가 나고 주로 자기들끼리 조용히 다니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동아리니 동문회니 하며 왁자하게 다니며 학교에선 공부 반 노는 거 반 했고 길거리 시위나 주점에서 서로 부딪히곤 한 시절이었는데, 그네들은 수업 외에는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참, 졸업여행만 빼고요. 재학 중 이런저런 고시에 합격한, 능력도 있는 도련님들이 마치 신입생인 듯 그때서야 자기소개를 하며 매너 있게 내미는 손을 엉겁결에 마주 잡았더랬습니다.
  그 이후 그네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사는 곳도, 방식도 전혀 다르니 이 역시 잘은 모르지만 누가 어떤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느니 하는 소식은 들립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매스컴에도 오르내리는 유명인사가 대학 때 그네들 중 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고요. 어쩌다 동기들끼리 만나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기에는 공통범주 자체가 제한적이기도 하거니와, 상대적으로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들한테도 권력의 힘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 사회인지라 아무래도 한 자리씩 하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이들의 화려한 업적과 근황이 주된 대화거리가 됩니다. 필시 마주쳐도 누구인지 쉽사리 알아보지도 못하고 저쪽 역시 나를 알아봐 주지 않을 이들의 이름이 사회적 지위에 따라 흔히 언급되는 통에, 대학 때부터도 걔들과 잘 아는 사이였던가 싶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 하는 드라마를 보아 하니, 바로 그런 사람들끼리 마치 세상이 자기들 손아귀에 있는 양, 이런저런 직위들을 차지하고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한 결과가 돌아가든 말든 아랑곳없이 직·간접적으로 정책 결정에 개입해 이권을 주무르던데, 이런 식이라면 현실에서도 청문회를 통과하니 마니 하는 인사가 아는 사람일 경우도 조만간 생길 것 같습니다. 그들이야 워낙 자기들끼리 그리 살아온지라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테고 그와는 다른 삶은 알아야 할 이유도, 알게 될 기회도 없고 어쩌면 상상조차 못 할 테지만, 부정과 부패로 점철된 이력을 뻔뻔하게 과시하는 그런 얼굴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모욕적일뿐더러 희미한 옛 기억 속 한때 정중했던 얼굴과 겹친다면 더욱 참혹할 것 같습니다. 누구는 “그만한 자리까지 오르려면 그 정도는 해먹어야 했을 터”라고, 그야말로 하해와 같은 이해심을 보여주기도 했다지만, 이 사회에는 잘못된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직 꽤 있지 않나요? 선량하되 부당한 일에는 마땅히 분개하고 저항하는, 사람됨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지 않나요? 어쩌면 그런 소박한 믿음이 오히려 벌써 풍문이 되어 버린 것인가요?
 오정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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