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낳은 세기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수많은 작품 중 규모가 가장 크고 강한 호소력을 지닌 작품은 단연 이 벽화 형식의 <게르니카(Guernica)>라고 할 수 있다. 피카소가 당시 스페인 내란으로 인한 전쟁의 비극성을 극적인 감성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피카소가 50대 중반에 이르렀을 무렵, 스페인에서는 일부 독일 나치를 지지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좌익 공화주의 정권을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1937년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자그마한 시골 ‘게르니카’라는 마을에 갑자기 폭격을 가하게 된다. 그로 인해 피카소는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고 일종의 반전(反戰) 메시지가 담긴 <게르니카>를 제작하게 된다. 이 작품의 상황적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당시 나치의 비행기가 친공화주의 성향의 도시로 알려진 ‘게르니카’에 대낮에 사정없이 폭탄을 투하하여 수백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집단으로 사망하게 된다. 당시 이곳의 시골의 한 초등학교도 폭격당해 수업 도중이던 어린 학생들도 집단으로 참상을 입었다. 이러한 처참한 소식을 전해 들은 피카소는 이에 격분한 나머지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이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한편 그 당시 공화주의 정부는 그 무렵 파리에서 ‘세계 만국박람회’가 개최되는 시점을 계기로 피카소에게 정식으로 이 벽화 제작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렇듯 비참한 참상을 미술작품을 통하여 세계만방에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피카소는 이러한 사건으로 비추어 볼 때 화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이 내전이 일어난 후에 “그림(회화)은 벽을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의 도구이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게르니카>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형상과 사물이 다수 등장한다. 그는 본래 의미가 지나치게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늘 그 의미들을 설명하는 것을 꺼렸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매우 다큐멘터리적 성격의 분노한 극적인 테마를 주저 없이 연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품에 주제로 등장한 말은 분노한 사람을 의미하고, 황소는 내란의 비극과 암흑 속의 잔인함을 뜻한다. 또한 그림 왼쪽에는 한 여인이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부짖고 있고, 살아남은 어떤 황소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군인이 바닥에 죽은 채로 누워 있기도 하고 그 위에 창에 찔린 말이 어지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 반대편으로는 공포에 질린 어떤 얼굴이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불타는 집에서 한 여인이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동안 다른 여성은 탈출을 시도하는 듯하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든 형상이 각진 형태로 날카롭게 묘사된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러한 형태들 사이에 사물들이 해체되고 부서진 것처럼 보이면서 파괴한 부분들이 강조되어있다. 고통으로 점철된 사람의 얼굴들은 피카소 특유의 입체파적 기법으로 왜곡되어 재해석된 작품이다. 그 외에도, 명암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내전 당시 폭발의 순간적 섬광을 암시하는듯하며 별다른 유채색을 사용하지 않아 그림은 한층 더 냉혹하게 다가온다.­­

  작품은 당시 신문을 통해 참혹한 현장을 먼저 접한 피카소의 번뜩이는 감성과 그만의 고유한 표현기법이 발휘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 이 참담한 현장에서 그는 무엇을 상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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