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제19대 국회 본회의에서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재정·회계법)>이 통과되었다. 길고 길었던 기성회비 징수의 불법성 논란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전국 국공립대학의 학생들이 첫 기성회비 반환소송을 진행한 지 5년, 정부가 국립대학 법인화의 일환으로 현 재정·회계법의 모태가 되는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을 발의한 지 7년 만의 일이다. 법안 통과에 따라 국립대학의 재정구조는 물론 운영방식과 직원의 고용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책임범위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회계 신설, 기성회회계역사 속으로

 

  재정·회계법의 통과가 국립대학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기성회회계와 일반회계가 통합돼 대학회계가 신설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립대학의 재정은 기성회비를 바탕으로 하는 기성회회계와 수업료를 기반으로 한 일반회계로 이원화돼있었지만, 법안 통과에 따라 일원화가 이뤄지게 됐다. 따라서 그동안 불법성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왔던 기성회회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미 불법성이 인정된 기성회비를 국회가 나서서 다른 형태로 징수할 근거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심현덕 간사는 “결국 기성회비가 합법화된 셈”이라며 “국공립대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재정위원회 설치 의무화… 학생 참여권은 두고 보아야
 
  예산 및 결산 등 국립대학의 재정 심의 과정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국립대학의 재정 및 회계 운영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가지는 재정위원회의 설치가 의무화된 것이다. 재정·회계법은 제8조부터 10조까지의 내용을 통해 재정위원회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총장은 대학회계의 예산 및 결산에 관해서는 재정위원회의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하며, 기타 사항에 대해서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 재정위원회는 11~15인의 인원으로 구성되며 교수, 학생, 교직원이 각각 최소 2인 이상 포함된다. 또 대학본부가 재정위원회에 제출하는 재정보고서와 재정위원회의 회의록은 공개되어야 한다. 
  재정위원회 설치에 관해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 이수연 연구원은 “종전에 비하면 대학의 재정운영에 학생들이 참여할 여지가 많아진 것”이라면서도 “실질적 효과는 두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위원회에 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김한성(전남대 지리 08) 의장 역시 “각 대학의 학생회들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의 지원의무 명시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재정·회계법은 제4조에서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립대학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을 명확하게 규정하겠다는 법안 제안 이유와 맞닿아 있다. 지난 2008년에 발의됐던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에 비해서 발전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에게 주어진 국립대학 재정지원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가볍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재정·회계법 제4조 1항과 3항은 ‘국가는 국립대학에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지원금을 매년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2항에서는 ‘국가는 종전의 각 국립대학의 예산, 고등교육예산 규모 및 그 증가율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도 있다. 이에 대교연은 논평에서 “제한적인 예산만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예산 증액은 정부가 ‘노력’하는 선에서 판단하겠다는 의미”라며 “기존에 국립대학에 지원하던 예산 규모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분석했다.
 
기성회 직원의 신분은 보장돼
 
    법안은 기성회회계의 폐지로 신분이 불안정해진 기성회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도 담고 있다. 재정·회계법 부칙 제4조에서 기존의 기성회 직원들을 대학회계 직원으로 신규 채용하며, 근무조건에 있어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전국대학노동조합은 기성회 직원들을 대학회계 직원으로 직무전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이에 반대했다.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서 기성회의 패소가 확실시되는 상황을 의식한 것이다. 직무전환이 이뤄질 경우 대학회계가 기성회를 승계한 것으로 판단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전국대학노동조합 김병국 정책국장은 “교육부는 기성회비 반환 소송의 주체가 대학회계로 승계될 것을 우려해 직무전환에 반대했다”며 “때문에 기성회에서 퇴직한 다음 대학회계 직원으로 신규 채용되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기성회 직원에게 기성회회계에서 지급되어왔던 급여보조성경비는 사실상 삭감됐다. 법안에서 보장하는 근무조건에서 제외된 결과다. 김병국 정책국장은 “급여보조성경비가 삭감된 대신 다른 부분에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형태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었던 조항 삭제, 하지만 부칙 개정 꼼수는 남아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의 발의안에서 논란이 되어왔던 조항들은 사라진 상태다. 국립대학의 적립금 축적 허용이나, 발전기금을 이용한 수익사업 허용 등의 조항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심의를 거치면서 삭제된 것이다. 해당 조항들은 ‘국립대학을 사립대학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수연 연구원은 “당초 제시되었던 법안 초안에 비하면 나아진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한성 의장 역시 “국립대학을 사립대학처럼 만들려고 했던 시도가 좌절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재정·회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부칙 개정을 남용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등교육법> 제11조 7항은 등록금의 인상률이 3년간의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재정·회계법이 제정됨에 따라 수업료와 기성회비가 통합되면 <고등교육법>에 위배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동안 등록금에 포함되지 않았던 기성회비가 등록금의 일부가 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지난 3일 진행된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게 되면 올해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평균 400%에서 최대 2,700%까지 인상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재정·회계법 부칙 제5조를 통해 <고등교육법>에 ‘2015학년도 등록금에 대해서는 해당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부칙을 신설했다. 지난달 13일 진행된 교문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교육부는 이 내용을 담은 재정·회계법 부칙 제5조의 통과를 호소했고, 의원들에게 법체계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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