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모임’이 진보 재편과 결집을 위해 나서면서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이 추진되고 있다. 진보신당 창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은 중도노선을 추구해왔는데 그럴수록 새누리당과 정책이 유사해지는 포괄정당화 현상이 발생해왔다. 사실 대북정책을 제외하고 두 당의 정책은 대동소이하다. 복지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유화와 재벌 중심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새정치가 집권했더라도 새누리의 엉망진창 복지정책과 오십보백보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새정치가 중도로 옮겨갈수록 진보를 대변하는 정당의 목소리는 줄고, 그만큼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국정에 반영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사회 약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중도정당화 되어가는 새정치를 견제하는 진보신당이 등장하는 것은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국민모임이 빅텐트론과 범진보론을 기조로 신당을 추진한다면 문제가 있다. 새정치보다 이념적으로 더 좌측에 포진하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해서, 신당이 새정치를 대체할 정치적 능력을 자동적으로 가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진보신당이 새정치를 대체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더욱이 빅텐트론을 통해 진보세력 뿐 아니라 민주개혁세력까지 포함된 신당을 창당할 경우 신당이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자리잡기도 힘들다. 그 경우 신당은 새정치의 쌍둥이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빅텐트론을 통해 신당을 건설하더라도 어떻게 민주개혁세력과의 경쟁에서 진보세력이 이기고 당내 주도권을 잡을 것이며, 어떻게 새정치에 소속된 민주개혁세력, 진보세력과 차별화할 수 있단 말인가?민주당의 후신인 새정치는 관록의 역사와 조직력, 그리고 다수의 현역의원을 쥐고 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범진보와 범민주개혁 세력이 빅텐트 아래 하나로 모여야 한다는 논리는 실현불가능에 가깝다. 범진보 세력만의 빅텐트론도 쉽지 않다. 진보결집에 무관심한 통진당이 있고, 범진보 세력이 공유할 만한 가치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모임은 반신자유주의를 진보결집의 구심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경제성장과 소득향상을 갈구하는 한국 유권자들에게  반신자유주의 구호가 들어맞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무역대국이고 제조업 강국이며 국민들의 소비수준은 높다. 그리고 한국경제라는 몸통과 국민의 머리는 무역과 금융자유화, 성장지상주의와 물질중심주의 같은 신자유주의 가치에 강하게 경도되어 있다. 반신자유주의로 범진보를 묶어내기는 명분상 쉬울 수 있지만 득표에 있어서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더욱이 한국정당은 뿌리 깊은 보수일변도 경로를 지니고 있으며, 유권자들은 보수언론과  정치인, 경제적 재배세력이 재생산해내는 반공, 반종북, 시장지상주의 이념의 헤게모니에 강하게 영향 받고 있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은 역사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나 헤게모니적으로도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빅텐트론이나 범진보론 같은 무리한 외연확대 전략은 실패를 자초하기 쉽다.
  결국 국민모임에게 필요한 것은 새정치를 대체하는 빅텐트론이나 범진보론이 아니라 포괄정당화된 양대 정당과 차별화된 진보신당 건설이다. 진보신당은 정치에 대한 현실적 감각을 지니고 대한민국의 지속발전과 국민들의 물질적 욕구 충족, 북한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반전반핵, 복지국가, 노동권 확보, 서민과 청년 생활권 보장, 친환경, 인간다운 교육 등을 추구하면서 양대 정당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대 정당이 서로 유사한 정책으로 포괄정당 경쟁을 벌이는 공간에서 진보신당이 틈새를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범진보와 범민주개혁세력이 다 참여하는 신당보다 범진보 정당을 창당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범진보 정당을 창당하는 것보다 소텐트론을 중심으로 기존의 진보정당을 재편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범진보 세력에게 더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선거제도에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더 많이 확보할수록 범진보 세력의 국회 진출 가능성과 정치적 영향력은 커진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 진영 득표율은 10% 정도였다. 이론상  국회의석 30석이 최대치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범진보론이나 빅텐트론은 곤란하다. 새로운 진보와 작은 텐트론이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 지지율을 의석으로 온전하게 실현해 내는 일이다. 우파와 중도 일색인 한국 정당구조에서 이념적으로 가능한 좌방한계선은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되고 선거제도가 개편되면, 좌방한계선은 진보주의와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로까지 확대될 수 있고 우리사회 약자들의 이해관계가 국정에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다. 가능한 좌방한계선을 좌측으로 확장하는 것, 그것이 극심한 양극화로 침몰 중인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부상(浮上)시킬 하나의 방안인 것이다.

진시원 일반사회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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