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는 오싹하지만 뭔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썩어 문드러진 사지육신이라도 그나마 제자리에 붙어 있으면 다행인 여타의 잡귀들과는 달리 완벽한 젊은 육체-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한-를 한 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점이 뱀파이어를 유독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뱀파이어가 그렇게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매개는 물론 신선하고 뜨거운 피다. 
  최근 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몇몇 연구팀들이 생쥐를 이용한 개체결합 실험을 통해 젊은 생쥐의 피가 늙은 생쥐에게 회춘을 가져왔다는 실험 결과를 접했다. 개체결합(Parabiosis)란 살아 있는 두 동물의 혈관계를 연결해 혈액을 공유하도록 만든 것을 말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샴쌍둥이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혈액은 비록 전설 속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명력의 정수(精髓)라고 하기엔 무리이지만, 또한 혈액 속에는 생명체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인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겉보기에는 그저 동일한 붉은 피일지라도 각자가 겪어온 환경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항체와 면역세포들이 존재할 것이기에 개별 개체들이 같은 피를 공유했을 때 나타날 결과들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던 중, 몇몇 연구에서 서로 월령(月齡) 차이가 많이 나는 생쥐들의 경우, 개체결합을 통해 나이 든 생쥐에게서 눈에 띌만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 관찰된 것이다. 젊은 생쥐와 결합된 늙은 생쥐들은 심장, 뇌, 근육 등의 장기가 이전보다 활력을 되찾았으며, 결과적으로 보통의 생쥐에 비해 평균 4~5개월의 수명을 덤으로 얻었다. 생쥐의 평균 수명을 고려한다면, 이는 사람으로 치면 8~10년은 더 산 셈이 된다. 영화 속 뱀파이어들이 유독 젊고 아름다운 미녀들의 피를 갈구했던 이유도 젊은 피의 효과를 알았기 때문일까? 굳이 개체결합까지 하지 않더라도 젊은 생쥐의 피, 그중에서도 혈장 성분만 꾸준히 수혈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으며, 혈장 속에 포함된 GDF11(Growth Differentiation Factor 11)나 옥시토신 등을 단독으로 투여해도 어느 정도 회춘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이 실험 결과가 사람에게도 동일한 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자들은 신중한 편이다. 진시황 이후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명약을 얻고자 노력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명 연장과 실질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밝혀진 것은 칼로리 제한과 라파마이신 요법, 두 가지 뿐이다. 필수 영양소가 갖춰진 상태로 열량만 30% 정도 줄인 식이요법을 실시한  생쥐의 수명은 약 50% 정도 늘어나며, 라파마이신을 적절히 투여받은 생쥐는 30% 정도 수명이 연장된다. 하지만 열량 제한은 덩치가 큰 동물로 갈수록 수명 연장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며(적당히 굶긴(?) 초파리는 수명이 2배나 늘어나지만 같은 조건의 영장류는 겨우 10% 정도 늘어날 뿐이다. 또한 현실에서 사람이 평생동안 다이어트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라파마이신도 애초에 면역 억제제와 항암제로 개발된 약이므로 자체의 독성 때문에 지속석인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기에 젊은 피가 가져다줄 수 있는 회춘 효과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지금껏 모든 것이 그랬든 내 손에는 쥘 수 없는 무지개 같은 존재일지, 혹은 파랑새는 늘 가까운 데 있듯 젊음의 비밀은 주변의 젊은 육체 그 자체에 있을지 말이다. 하지만 이미 이 절반의 가능성에 대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대로 알츠하이머로 고통받은 내력을 지닌 한 기업의 총수 가문이 연구비를 지원해 50세 이상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청년의 혈장 수혈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연말쯤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되는데,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우려되는 바가 더 커질 듯싶다. 이미 많은 것이 경제학적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에서, 자칫 ‘가진 건 젊다는 것밖에 없는’ 청년들은 마지막 보루이자 유일한 자산인 젊음 그 자체마저도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당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젊고 건강한 몸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그 방법이 부디 남의 젊음을 밟고 서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이은희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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