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학기말 성적확인기간이 되면 대학은 홍역을 앓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점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불만이고, 교수는 그런 학생들을 상대하느라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어떤 평가든지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이나 성과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합당한 학점을 주지 못한 교수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다.

우리 대학은 2005년 무렵부터 학생들의 성적 평가를 상대평가제로 시행해 오고 있다. 상대평가제가 도입된 배경에는 성적을 남발한 일부 교수들, 대학 학점의 신뢰성에 대한 외부의 문제제기 등이 깔려있었다. 상대평가의 도입결정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학점평가를 인재양성이라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기보다는 다분히 편의적이고 방편적인 해결에 치우쳤다는 점이다. 실제로 상대평가제가 과연 학생들의 열의와 학문정진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을 몇 가지 측면에서 냉정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학에서조차 줄세우기를 강요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줄세우기가 가진 인간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줄세우기가 학문논리에 맞는가 하는 점이다. 줄세우기가 가능하려면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는 획일적인 기준이 존재해야 하는데 학문에 그런 기준이 존재하는가? 게다가 오늘날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주어진 기준에 맞추어 학습해온 학생들이 얼마나 창의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은 ‘내가 얼마나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는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학생보다 얼마나 더 했는가’가 중요해진다. 이는 경쟁을 통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역으로는 전반적인 하향평준화로 나타날 수 있다. 자기발전을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남보다 앞설 정도로만 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학문적 시도를 하는 모험정신보다는 남들과 같은 방식을 답습하면서 위험을 감소시키는 소위 ‘안전빵’을 추구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도 창의성은 키워지기 어렵다.

강의의 쏠림현상도 과연 해결되고 있는가? 학생들의 현실적인 학점관리전략에서는 대규모 강좌가 선호되기도 한다. 소규모 강의보다 대규모 강의가 학점분포에서 정규분포의 형태를 나타내게 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안정적인 학점관리를 위해서는 학점과 노력의 상관관계가 예측가능한 대규모강의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즉, 소규모 강의는 모든 학생들이 열심히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대규모 강의보다 낮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학생들은 대규모 강의를 선호하게 된다.

학문의 성격상 반드시 필요하지만 내용이 어렵거나 많은 과제수행이 필요한 과목들도 있다. 그런 필수교과목에서 ‘충실히 따라오기만 하면 학점을 주겠다’는 식의 동기부여는 불가능하며, 학생들은 ‘빡센 수업’이 지식과 능력향상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같은 노력으로 더 나은 학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헐렁한 수업’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수들 역시 강의에 대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교수-학습자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창의적인 과제수행, 다양한 능력을 지닌 학생간의 협동적 학습을 통한 인성과 사회성 함양 등이 중요하다. 학생도 교수도 불만이고,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도 도움이 안 되는 상대평가제를 이제는 절대평가제로 환원하는 것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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