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우주오페라 <인터스텔라>가 관객 스코어 700만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려올 즈음 IMAX 상영관 암표까지 등장했다는 뉴스도 들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급한 마음에 '아무 데나'(!) 가서 일단 그 화려한 면모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렇게해서 가게 된 '아무 데나 극장'은 디지털로 상영하는 아담한 규모의 일반상영관이었다.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은 70mm 필름 IMAX 상영관에 최적화된 영화라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답답할지는 몰랐다.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지금 보지 못하는 것을 상상하는 일, 프레임 내부에 있어야 마땅한 것이 지금 여기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배웠을 뿐 영화관에도 차원이 있다고 고집하는 까탈스런 시네필은 되지 않으리라 작정한 나로서는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료를 뒤져보고서야 내가 본 <인터스텔라>는 2퍼센트가 아니라 50퍼센트 부족한 버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인터스텔라>의 경우 극장은 35mm 필름 상영관, 디지털상영관, 디지털 IMAX 관, 70mm 필름 상영관, 70mm 필름 IMAX 관으로 선택지가 무척 다양하다. 화면비율로 말하자면 2.35: 1에서 1.43: 1까지 약 두배쯤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는 와이드스크린인 2.35:1이 더 선호되는 비율이지만 <인터스텔라>의 경우 표준화면비인 1.43:1이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확장된 부분은 스크린의 가로가 아니라 세로부분이다. 그러니 화면비로 말하자면 나는 놀란이 촬영한 이미지의 가로축 절반만 본 셈이다.

이쯤 되면 사태는 간단치 않다. 어쩌면 서로 다른 극장을 선택한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실로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하는 매체로 전환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체험의 실감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의 이미지를 창조하고(CG), 2차원에 깊이를 더하고(3D), 촉각적인 감각을 덧붙이는(4D) 것으로 강화된다고 믿는 숱한 감독들 사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중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첨단의 상영조건을 전제로 한 영화를 내놓으면서도 그는 차라리 디지털 시대에 가장 고전적인 필름 신봉주의자에 가깝다.

<인터스텔라>에서 놀란은 와이드스크린 대신 예전 TV 화면비인 표준화면을 지향하고(물론 스크린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깨끗하고 선명하며 마모가 없는 디지털 대신 풍부한 색감에 반해 오염과 마모에 약한 필름을 고수하고, 세상에 없는 이미지를 CG로 구현하는 대신 작게나마 실물로 존재하는 미니어처를 제작할 것을 고집했다. 지극히 수공업적인 이 모든 과정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시대착오적인 장인의 유난스런 아집일리 없다. 내 생각에 그가 여기서 구현하려 했던 것은 디지털 시대 이전에 우리가 '리얼'한 것이라 불렀던 어떤 것인 것 같다. 그것은 시각적인 것이면서 정서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사이언스 픽션(SF)에서의 방점을 픽션(상상력이라 불러도 좋겠다)에서 과학적 사실로 옮겨놓은 다음 그 시공간을 감정적 드라마의 장으로 펼치는 이 영화의 전략을 떠올려보라. 영화의 후반부, 5차원 블랙홀 안에서 아버지와 딸이 조우하는 장면은 우리가 스크린으로 난생 처음 목격하는 블랙홀의 내부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그들의 드라마에 초점이 가있다.

결국 우리가 영화에서 진짜로 체험하고 싶은 것은 감각이 아니라 감정이 아닐까. 영화의 기술이 아무리 경천동지할 수준으로 발전한다하더라도 영화가 안기는 매혹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인터스텔라>가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한 할리우드의 최첨단영화라 하더라도 디지털 시대의 욕망을 따르는 대신 아날로그의 힘을 믿는 영화라는 점이 내겐 사뭇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어쨌거나 진짜를 보려면 수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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