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권 3년차가 다가오면서 개헌 논의가 다시 바빠지고 있다. 개헌이 왜 이리 정치권을 부산하게 만들고 있을까? 헌법은 무엇이고 개헌에 관한 이론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며, 개헌을 한다면 무엇에 중심성과 우선성을 두고 해야 할까? 개헌에 관해 고려해야 할 점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헌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학에서 바라보는 헌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통일, 외교안보 등의 제반 영역에서 한 나라가 추구하는 핵심 운영원리를 명시한 최고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보았을 때,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 자체를 명시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헌법은 정치과정의 산물이다. 정치 과정에서 귀결된 권력관계나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 바로 헌법이라는 것이다. 민주 국가에서 헌법은 이론적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구성된다. 하지만 헌법이 반드시 국민 모두에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공정한 것은 아니다. 헌법이 권력관계에서 드러나는 집단들 간의 힘의 우열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적 타협과 배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은 그 본질상 당파적이기도 하며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을 지닌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더 우세적으로 반영하는 경향성도 지닌다.

둘째, 개헌에 관한 이론이다. 개헌을 바라보는 정치학의 시각은 두 가지이다. 자유주의적 헌정주의와 공화주의적 헌정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주의적 헌정주의는 개헌이 너무 쉽고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다. 반면, 공화주의적 헌정주의는 헌법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나라가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이 바뀌고 국민들의 의견이 바뀌면 개헌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자유주의적 헌정주의가 헌법의 안정성과 일관성 및 최고 권위를 중시한다면, 공화주의적 헌정주의는 국민들의 입장을 최우선시하고 그것의 헌법에의 반영을 더 중시한다. 달리 말해, 전자가 ‘법의 지배’를 우선시한다면, 후자는 ‘국민의 지배’를 중시하는 것이다. 셋째, 개헌에서 중요하고 선차적인 과제는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헌법 정신과 국가 정체성이 무엇인지 국민적 합의를 통해 수정하는 것이다. 현행 5년 단임제 권력구조를 대통령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제 등으로 바꾸는 것보다 우리 헌법 정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그것을 새롭게 재조정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헌법에 자유권과 참정권에 비해 약하게 반영되어 있는 사회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헌법 정신과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헌법 조항들 중에 현재 서로 충돌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적 요소와 사회 민주주의적 요소 간의 제대로 된 관계설정이 권력구조를 바꾸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넷째, 현행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비례성과 대표성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해 비례성과 대표성을 끌어올리면 정당구조가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정당구조가 바뀌면 적지 않은 정치개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역시 높아진다. 반면에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를 바꾼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정치개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다섯째,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국회의원들 손에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시민세력이 참여하는 과정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자신의 의원 당선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국회의원들에게 헌법을 국민의 의사대로 개정해주고,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끌어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원래가 실현 불가능한 요구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기라는 것이다.

87년 민주화 결과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민주화 이후 변화된 한국 사회와 국민들의 일반의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 단계 한국사회는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개헌은 더 이상 회피하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개헌은 정치인들이나 법 엘리트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시대상과 국민들의 일반의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공화주의적 입헌주의 시각에 기초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개헌은 87년 민주화 이후 정체, 답보, 퇴행 상태를 걷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재민주화(re-democratization)를 위한 필수 요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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