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혜(사학 석사 2)

   필자에게는 2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거의 인생 전부를 같이 보낸 셈이다. 필자는 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 친구를 사랑한다. 우리는 처음 알고 지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언제나 함께 했다. 웬만한 가족사는 물론, 이 세상에서 그 친구와 나밖에 모르는 비밀도 많다. 나는 지금부터 그 수많은 비밀들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친구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신경정신과에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의사의 진단은 조울증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전부터 그와 같은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다만 친구가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이 걱정되어 쉽게 얘기할 수 없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누구보다 기뻐하고 가장 멀리 있는 곳의 아픔까지 슬퍼하는 친구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도 자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힘들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스스로에게는 물론 가족에게까지 폐가 될까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에게 조차도 말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지만, 절대 말하지 않았다. 소리 내어 말하면 그것이 글자로 새겨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손목을 그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그렇게 하니까 좀 낫더라”
 
  그 이후에도 친구의 자해는 계속되었다. 필자 이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친구의 덤덤한 고백을 듣고서 많이 울었다. 친구가 자신의 몸에 제 손으로 칼을 댔다는 사실도 가슴 아팠지만, 그것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슬펐다. 친구는 이미 많이 무뎌져 있었다.
 
  이후에 친구의 어머니가 우연히 그 상처를 발견하고는 많이 우셨다고 한다. 친구는 아직도 그 당시 뜨거운 눈물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어머니의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
 
  그 때 친구는 처음으로 다짐했다. 절대 자신의 아픔을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그 이후로 친구는 우울감이 찾아오면 언제나 그 사실을 나에게만 알렸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나를 빈 방이라고 생각해.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이 방에 들어와서 마음껏 울다가 눈물이 그치면 다시 나가면 되는 거야”
 
  그랬다. 나는 빈 방이었다. 그 방에는 편견도, 동정도 없었다. 그냥 그 방이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에게는 마음껏 울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그러다가 그것이 힘에 부치면 그냥 쓰러져 잠들어 버릴 수 있는 빈 방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와 같은 방이 될 수는 없다. 애정 없는 연민, 진심 없는 위로에는 치유의 힘이 없다.
 
  우리 모두는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빈 방이 되어주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큼은 내 마음의 한 공간을 온전히 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사랑이 담긴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를 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선뜻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된다.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자신이 나를 지치게 만들지는 않았냐고. 나는 말했다. “난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네 옆에 있었을 뿐”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