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겨울,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도착했다. 거기는 더 이상 발 내디딜 곳 없는 남도의 끝자락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8년이란 긴 유배생활을 지내야 했다. 그런 간난의 시절, 다산은 그곳에서 어떻게 지냈던가? 우리는 그가 그곳에서 남긴 방대한 저작의 목록들을 기억하고 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등. 한 사람이 해낸 작업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다. 범인의 능력을 훌쩍 넘어선 그 저작들은, 척박한 유배지가 일궈낸 한중세지성의 기념비적 분투임에 분명하다. 다산 자신도 그 시절을 ‘천여 권의 서적을 쌓아두고 책 쓰는 걸 낙으로 삼으며 지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 그의 회고에서 깊은 좌절과 고독을 읽어내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혹독한 시련이 한 인간을 얼마나 뜨겁게 단련시켜 경이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했는가를 보며 감동하게 된다.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지내던 장면은 이러했다. ‘20년 가까이 고독하고 우울한 심경으로 지내던 시절, 다산 초당에서 연구저술에 마음을 기울였다. 여름의 무더위에도 쉬지 않고, 겨울밤에는 늘 새벽닭의 울음을 들었다. 제자 가운데 경전을 열람하고 역사서를 탐색하는 자가 두서너 명, 부르는 대로 바삐 받아쓰는 자 두세명, 손을 바꿔가며 원고를 정서하는 자가 두세 명, 옆에서 줄을 치거나 교정ㆍ대조하거나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는 자가 서너 명이었다’

기실, 다산이 유배지에서 편찬한 그 방대한 저작은 이처럼 숙련된 젊은 제자들과 함께 일궈낸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다산학단(茶山學團)’이라 부른다. 아마도 다산은 그때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등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지식인 모임을 떠올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연암그룹’이라 명명되는 이들은 서울 탑골공원 주변에서 자주 어울리며, 최신 정보를 교환하고 번뜩이는 사유를 공유하고 날카로운 논점을 가다듬던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었다. 이들의 모임을 듣고 보았을 다산은 남도 끝자락에 홀로 내쳐진 뒤, 그네들의 활달하고도 자유로운 지적 교류를 점점 더 아름다운 모임으로 깊이 간직했을 법하다. 다산 자신도 그런 지성들과의 학문공동체 조직을 꿈꾸면서.

하지만 강진은 학인(學人)을 좀체 만나기 어려운 변방 가운데 변방이었다. 그럼에도 다산은 구석구석 제자를 찾아 길러내고, 그들을 학문적 동지로 하나하나 동참시켜 나갔다. 가장 믿음직스런 제자 황상(黃裳)을 학문의 길로 인도할 때의 다산 모습은 우리를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다산은 어린 황상을 보고, 그의 잠재력을 읽어냈다. 그리하여 공부를 권유했다. 그러자 황상은 머뭇머뭇 부끄러워했다. “저는 부족한 점이 세 가지나 됩니다. 첫째 둔하고, 둘째 꽉 막혔고, 셋째 미욱합니다” 그러자 이렇게 타일렀다. “공부하는 자에게 세 가지 병통이 있는데, 네게는 그게 하나도 없구나. 첫째 외우기를 빨리하면 그 폐단은 소홀히 되며, 둘째 글짓기에 빠르면 그 폐단은 부실하게 되고, 셋째 이해를 빨리하면 그 폐단은 거칠게 된다. 무릇 둔하면서 파고들면 그 구멍이 넓어지며, 막혔다가 소통되면 그 흐름이 탁 트이며, 미욱한 것을 닦아내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된다. 파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함이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함이다. 닦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역시 부지런함이다. 그렇다면 부지런함은 어떻게 할 수 있느냐? 마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요즘에야 느끼게 된 것이지만, 잘 외우고, 글 잘 짓고, 이해가 빠른 게 학문하는 사람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앞뒤 꽉 막힌 학생이 나중에 훌륭한 학자로 크는 걸 종종 지켜볼 수 있었다. 확고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파고, 부지런히 뚫고, 부지런히 닦는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격려가 입에 발린 거짓이 아니건만, 그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닐 터다. 하지만 털끝만큼의 가능성이라도 허투루 보지 않고 제자로 키워내던 다산의 열성적인 제자 교육, 그건 학문적 동지에 대한 갈망 혹은 학문적 외로움의 다른 표현일 수 있겠다. 그리하여 단점조차 장점으로 뒤바꿔 놓는 참스승이 될 수 있었다. 정말 그러하다. 혹독한 시련, 그것은 한 인간을 좌절하게도 만들지만 발분하게도 만든다. 숱한 유혹과 시련이 마음을 혼미하게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다산의 엄중한 가르침이다.

   
 정출헌(한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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