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세상엔‘ 강’이 참 많다. 영남지역을 굽이 흐르는 낙동강부터 서울을 꿰뚫는 한강, 북쪽의 두만강까지. 강 주위에는 문명이 번성했고 생명이 싹트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강’과 친숙한 것이다. 보통, 강을 건너면 그 강 뒤에는 또다른 대지가 있고 강이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강들과는 달리 단 한번만 건널 수 있는 강도 있다. 삼도천, 레테 강, 요단강 등이 그것이다. 죽으면 건너는 강. 천국 혹은 지옥의 첫 번째 관문이거나, 윤회사상에 따르면 새로운 생명을 준다고 여겨지는 강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강을 건넌 사람에게 생기는 공통점이 있다. 도강(=죽음)과 함께 그와 관련된 기억은 모두 추억이 돼버린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의 앞부분이다. 사람이 정말로 죽어 강을 건넌다면, 소중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이보다 더한 바람은 없을 것이다. 76년동안 부부의 연을 이어온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방송공사의 <인간극장>에도 출연한 적 있는 이 노부부는 방송으로 인해 금슬 좋은 부부의 대명사가 됐다.

  할머니는 야밤에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할아버지와 함께 간다. 화장실 앞에서 할아버지는 노래를 불러준다. 꽃이 피면 꽃을 따며 놀고 눈이 내리면 눈싸움을 하고, 노부부는 그렇게 산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인간극장>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야기의 뒤를 찾아가고 있다.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던 시간은 가고, 강을 건널 시간이 다가온다. 좀 더 이 기억을 길게 가져가고 싶은, 단 석 달만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은 할머니의 바람을 뒤로한 채 할아버지는 강을 건넌다. 76년을 함께 살아온 할머니의 슬픔을 쉽게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무덤에서 한 걸음 떠날 때마다 뒤를 돌아보고, 결국 주저앉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추억으로만 남을 기억에 대한 회한이 자리하고 있음을 넌지시 느낄 수 있다.

  <인간극장>이 인터뷰와 내레이션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영화는 그 장치를 주로 이용하지 않는다. 서술하는 방식도 극적이기 보다는 평이하고,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담담하다. 다큐멘터리 속 사건은 ‘죽음’이라는 필연을 중심으로 느릿하게 굴러간다. 때문에 노부부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결국 필연처럼 느껴진다. 그래선지 내레이션도, 인터뷰도 없는 이 다큐멘터리의 연결은 한 치의 끊어짐이 없다.

  지난달 13일에는 이 영화의 개봉을 기념해 특별 시사회가 열렸다. 주연은 두 명이지만 시사회에는 강계열 할머니만이 참석했다. 그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주위에 있던 노인대학의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마지막 모습과, 그 옆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할머니. 노부부의 남들에게 보이기 힘든 모습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그 일부를 잡아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다큐멘터리이기 이전에 그 노부부의 마지막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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