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이 단지 ‘작은 극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두가 살기 힘든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연극쟁이’라 불리는 연극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소극장 연극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정말‘ 꾸준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살만해질 법도 한데 이들이 아직도 이토록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의 소극장 연극 전반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문제점과 방안에 대해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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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연극의 막이 내렸다. 몇 번 간의 커튼콜이 지나고 자리를 듬성듬성 채웠던 관객들이 빠져나가자 무대는 다시 부산해진다. 연극에 쓰인 기자재가 널브러져 있다.

“캬! 우리 감독, 수고했어! 잉?”

A는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날라리 선배가 있었다. 그의 본명은 따로 있었지만, 극단에선 아무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너무 바빠서 이번 연극에 참여 못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결국 참여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마의 주름이 더 늘어났다.

“야야 니가 제일 고생했다. 여긴 우리가 치울게, 잠시 앉아서 쉬어라”

그의 말대로 A는 조금 앉아 쉬기로 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몸이 탁 풀렸다. 이때까지 극도로 긴장했기 때문이다. A는 지난 두 달동안 ‘브레이크 없는 스포츠카’처럼 살았다. 이전에 진행하던 연극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다음 작품을 시작했다. 쉬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늦출 수 없었다.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은 것이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작품은 원작이 있고, 다른 극단에서도 여러 번 공연된 적 있었다. 각본을 허투루 쓸 수도 없었다. A가 각본만 썼던 것도 아니다. 극단에서 함께할 배우를 섭외하고, 시간에 맞춰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까지 생각해야했다. 인력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기에 다른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에게 조명, 효과음 연출도 맡겨야했다. 연극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돼도 A를 비롯한 배우들의 사정은 나아질 줄 몰랐다.

또한 시간 자체도 부족했다. 이번 공연은 2개월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정도 규모의 공연은 보통 3개월 정도 두고 연습하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빡빡했다. 그렇게 A는 2개월간 정신없이 달려왔고, 어찌어찌 오늘 초연을 했다.

 

#.2

“야, 일어나라. 할 일이 많다”

배우인 B는 잠시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일어났다. 순간 B는 앞이 어지러워 휘청거렸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 한 대만 피고 올게요”

B는 극장 밖으로 나왔다. B는 연극을 하며 동시에 PC방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다. 극단에서 그의 기수는 특히 재능이 많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정작 동기들은 여기에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부분이 서울에 위치한 극단에 들어갔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유능한 배우나 연출가들이 서울로 활동지를 옮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또한 지역 연극계가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다.

“잘 되는거 맞나...”

B는 이 상황이 불만족스럽다. 배우들은 최선을 다했고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실제로 반응이 나쁘지 않다. 전문가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늘어나는 것은 초대권 발행 수뿐이고 매출은 평행선을 달린다. 소극장 연극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런 상황은 수십년간 이어졌다.

밖으로 나가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가 내뿜는 것이 한숨인지 담배연기인지 분간할 수 없다.

 

#.3

C는 잠시 배우 일을 쉬고 있다. 대신 극단과 연결된 한 소극장에서 사무 일을 맡아보고 있다. 최근 들어 극장의 재정상태가 나빠졌다. 아직까지는 감내할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극단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관객 탓이 아니다”

“우리를 탓할 수만도 없는거 아닙니까”

극장 사장은 관객을 탓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C는 계속 불안하다. 몇 년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C가 아직 신인일 무렵, C의 극단을 많이 도와주고 공연도 올린 소극장이 폐관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가 몸담고 있는 극단의 단원들은 많은 충격을 받았다. 좋은 작품들이 많이 공연되는 견실한 극장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여러 극단이 협동조합을 이뤄 극장에 투자하는 걸로 어찌어찌 명맥을 이었지만, C의 극단 동료들은 의도적으로 그것이 미봉책임을 모른척 했다.

“연극하는거, 후회하나”

“안합니다”

C는 생각했다. ‘참 무모한 짓이었다’고. 처음에는 그저 흥미였지만 이 일을 전업으로 삼게 될 줄은 그도 몰랐다. 졸업 후 극단에 들어가서 연출자를 하고 있을 줄은. 그의 동아리 동기 중 전업 연극인은 없다. 친구들은 말한다. 아직도 연극하고 있냐고.

“한숨은 왜 쉬냐”

“미련이죠”

C 역시 좀 더 편한 길이 있었을까 하는 미련이 있었다. 한국연극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업 연극인의 평균 연봉이 약 400만원이라고 한다. 이 수치에는 어느 정도 과장도 있다. 소득 신고가 안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 400’이라는 수치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배고파야 진정한 예술’이라는 말이 사회적 당위가 돼버린 것이다. C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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