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반가운 손님들이 연구실을 방문했다. 엊그제 발표된 기록연구사 시험에 합격한 제자들이다. 이번에 합격한 학생들은 부경대, 해양대, 창원대 등의 국립대학과 지방검찰청, 세관, 정부출연기관 등에 배치될 것이다. 이미 많은 우리 졸업생들이 부산과 경남의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는 물론 교육청, 검찰청, 경찰청, 우정청 등에서 행정직 6급에 상당하는 기록연구사로 임용되어 일하고 있고, 대학원 재학생들은 내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록연구사는 널리 알려진 직업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아키비스트(Archivist)라 불리는 이 전문직의 역사가 100년을 넘었고 정부, 대학, 기업,종교시설 등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함으로써 전문직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이제 10년을 갓 넘었을 뿐이지만, 공공기록물관리법의 뒷받침에 힘입어 각급 기관에 기록전문직의 배치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 법률에 따라 중앙과 지방정부는 물론 모든 공공기관이 기록관리전문가를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기록연구사는 무슨 일을 하는가? 조선시대 사관이 왕의 말과 행동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듯이 현대의 아키비스트들은 공적 업무에 대한 증거를 남기고, 나아가 사회의 기억을 남긴다. 미국 국립기록관리기관은 기관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민주주의가 여기서 시작된다(Democracy start shere)!”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1999년 공공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기록이 무단으로 폐기되기 일쑤였고, 대통령기록물은 퇴임 후 트럭에 실려 사저로 옮겨지거나 사라졌다. 이런 환경에서 책임 행정은 존립할 수 없다. 업무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을 엄격하게 관리·보존하고, 국민에게 공개하는 데에서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디지털 환경에서 참여 행정과 소통 행정도 전자기록의 체계적 관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기록연구사는 또한 당대 사회와 삶의 기억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팽목항으로 달려간 사람들 중에는 시민 아키비스트들이 있었다. 기록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이브는 기억저장소이다. 9.11 테러사건이 일어났을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영상, 사진, 증언은 어떤 매체보다도 생생하게 사건을 재현하였고, 여기에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피해자 친지들의 추모가 더하여 만들어진 디지털 아카이브는 역사를 쓰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쯤에서 기록연구사가 되는 방법이 궁금할 것이다. 우선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자격을 얻는 좋은 방법은 기록관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다. 우리학교에도 기록관리학 협동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기록학은 인문학, 사회과학, 정보기술 등이 결합된 복합적 학문이기 때문이 학부 전공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기록연구사는 신뢰사회를 만드는 직업이며 성숙사회로의 이행에 꼭 필요한 전문직이다. 따라서 기록연구사에게 제일 중요한 자격은 어쩌면 윤리의식과 사회적 소명감일 것이다. 이글을 읽는 젊은 당신, 당신도 기록연구사가 될 수 있다.

   
 설문원(문헌정보) 교수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