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영화 <거인>

※<거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인1(巨人)[거ː인]

   
 
[명사] 1. 몸이 아주 큰 사람 2.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은 사람 3. 신화나 전설 따위에 나오는 초인간적인 거대한 인물

  ‘거인’의 사전적 정의는 위와 같다. 하지만 여기, 몸이 아주 크지도, 뛰어난 업적을 쌓지도, 초인간적이지도 않지만 누구보다‘ 거인’인 소년이 하나 있다.

  스스로 고아가 된 소년, 영재(최우식 분). 영재에게는 몸도 마음도,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없다. 술주정뱅이에 무능한 아버지와 병약하고 무책임한 어머니, 아직 어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동생으로 구성된 그의 가족은 영재로 하여금 스스로 고아가 되게 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혼자서 살 길을 찾는다. 천주교 재단 보육원인 ‘이삭의 집’에서 지내지만, 이제 너무 커버려 더는 그 곳에서 살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소년이 누구보다 간절히 신부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신앙심은 그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어른들 앞에서는 더없이 착한 모범생이지만, 뒤에서는 보육원의 물건을 훔쳐다 팔기도 하고, 친구에게 누명을 씌워 쫓겨나게 하기도 한다. 항상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남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화된 소년. 소년은 영악하지만, 그 영악함이 서글프다.

  영재는 절망을 먹고 자라 거인이 되었다. 아직은 따뜻한 가정의 울타리가 필요한 영재에게 세상은 희망이나 사랑이 아닌 좌절과 증오를 먼저 가르쳐줬다. 위로랍시고 내뱉는 무의미한 말들 속에 상처 받는 영재의 마음은 그가 열렬히 기도하는 주님조차 보듬어주지 못했다. ‘사람은 상처받는 만큼 자란다’는 말에 따르면, 영재는 거인임이 틀림없다.

  다른 성장영화들처럼 욕설이나 폭력, 극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불안하고 불행하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주체가 여느 영화에 나오는 특정한 ‘악인’이 아니라 한없이 낮은 삶의 질이라는 사실이 지독할 정도로 아프다. 관객은 영재를 통해 ‘청춘이니까 괜찮다’고 포장하는 것들의 맨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날 것의 청춘을 마주하는 것이다.

  영화 <거인>은 28세 신예인 김태용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재의 심리를 치밀하게 보여주는 연출이 돋보인다. 불안한 영재의 마음 속을 쫓으며 불안한 눈빛을 핸드헬드 방식으로 담아내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끝으로 갈수록 영재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많아지게 해, 마치 관객이 영재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 평론가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영화의 끝에서 영재는 결국 ‘이삭의 집’을 떠나 다른 시설로 가게 된다. 완전히 가족과 떨어진 곳. 그곳에서 그는 성숙을 위한 또 다른 아픔을 경험할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각자의 거인을 품고 있다. 진정한 거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영재의 성장통에 함께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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