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 도시 거리에는 커피의 유혹이 넘쳐난다. 최근 몇 년 사이 거리 곳곳에 팬시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커피집들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커피집 문화는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한 때 영국 런던 거리 곳곳에도 커피하우스들이 번창했던 적이 있다.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들어선 것은 1652년이었다. 터키와 무역을 하던 무역상의 하인이었던 파스카로제가 터키인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인 커피를 들여와 지금 런던의 금융 중심가인 콘힐거리에 커피하우스를 차린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당시 도시의 남자들이 끼리끼리 모이는 곳은 선술집이었고, 맛도 쓴데다 마셔도 취하지 않는 커피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은 공화주의 정치사상가였던 제임스 해링턴이 정치와 철학을 토론하기 위한 공간으로 커피하우스를 연 이후였다. 이곳에서 학문적 지식이 공유됐으며,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확신하는 사람들이 격렬하나 예의바른 토론을 벌이곤 했다. 커피 상인들은 커피를 ‘이성을 각성시키는 음료’라고 선전했고, 1683년에 이르면 런던에는 3천 곳이 넘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그 후 커피하우스는 커피 한 잔 값 1 페니만 지불할 수 있으면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드나들며 대화와 논쟁에 끼어들 수 있는 대중적인 공간이 되었다. 왕족, 귀족, 상인, 은행가, 법률가, 목사, 선원 등 계급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드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한 역사가는 “커피하우스가 마치 모든 피조물들을 모아들인 노아의 방주 같았다”고 쓰고 있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함께 어울리면서 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듣고, 정치와 이념, 문학과 철학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했다. 직접 원고를 써와 낭독하기도 했고, 귓속말로 중요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또 커피 하우스를 돌며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커피하우스 주인은 고객들을 위해 팸플릿, 신문, 잡지와 책을 비치했고, 가끔 학식 있는 사람들을 초빙해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커피하우스에는 할인판매, 항해, 경매 일정을 알리는 게시판도 있었다. 이렇듯 당시 커피하우스는 매스미디어나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모든 뉴스와 지식, 정보가 집결되어 공유되는 곳이었고, 최초로 궁정 밖에서 정치적 의견이 모아지는 여론 형성의 공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커피하우스에서 교환되는 지식과 정보, 정치적 의견들이 매우 진취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은 신분제도, 전제왕권, 종교적 통제 등의 전통적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였고, 대중들은 미신과 권위에 대한 맹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런던을 무대로 국제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게 된 상인들과 새로운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귀족층, 그리고 지식인들은 ‘이성’을 무기로 기존 가치에 도전했고,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와 제도를 제안했다.

당시 커피하우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잡지는 ‘더 스펙테이터’였다. 이 잡지의 편집자는 잡지 발간 목표가 영국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매호마다 사회를 비판하는 가치를 퍼뜨리기 위한 짧은 일화를 실었다. 또 당시 커피하우스에서 인기 있는 강연 주제는 근대 민주주의 이념의 기초를 마련한 존 로크의 사상이나 근대 과학기술 문명의 초석이 될 아이작 뉴튼의 물리학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가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꿨고, 권위에 복종하는 대신 이성에 따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활기가 넘치던 런던의 커피하우스 얘기를 하고보니 브랜드 커피 한 모금으로 경쟁에 지친 몸을 달래야 하는 샐러리맨, 취준생이 드나드는 우리의 커피숍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물론 당시 세계적인 도시로 부상하고 있던 런던에 비하면, 독과점 기업과 성장 논리의 수렁에서 헤매며 친기업적 정책만 늘어놓는 정부를 가진 우리의 현실은 더욱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런던 커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현실은 억압적이었고, 새로운 제도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성’을 믿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내어 말하기 시작했고 현실에 없던 새로운 세상을 함께 꿈꾸기 시작했다. 우리의 커피숍도 ‘꿈꾸는 커피하우스’가 되길 기대해본다.

   

 박경옥
서울교육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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