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영 편집국장

  여전하다. 정문과 넉넉한터는 오와 열을 맞춘 무리들로 북적인다. 귀에 익은 단어들이 반복되고, 낯익은 종이가 길바닥을 뒤덮는다. 인파 사이에는 흥이 난 이들이 있다. 익숙한 광경. 학생회 선거의 모습이다. 왜인지, 매년 이 즈음에는 어지럼증이 피어난다. 예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가련만 올해는 영 켕기는 것이 흘려버리고 싶지가 않다. 사실 원인은 수 해 전부터 명확했다. 해마다 같은 옷을 걸치고 같은 말을 외치는, 무한의 동어 반복은 항상 어지럼증을 동반한다. 옷이나 문구는 차치하더라도 그 얼굴마저 같으니 머리가 아프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오와 열은 달리했더라.

 

   중앙집행부가 전원 사퇴했다. 수줍음이 많은 이들인지 딱히 공고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향한 곳은 선거운동본부. 항상 그렇듯 학생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명분 삼는다. 잠시의 임기보다는 다음을 짊어지려 한단다. 한 해의 임기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 해를 이으려 하는지,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정권 연임을 위해 내각에서 사퇴하는 꼴. 더군다나 공고하지 않은 채 선거운동에 참여한 것은 명백한 회칙 위반이다.

 

  책임감을 발휘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묻고 싶다. 물론 무관심이 학생사회를 관통하는 지금,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아니다. 예년처럼 지지하고 싶다. 다만 이제는 그러기가 힘들다, 도저히. 선거본부의 공약집은 선거인에게는 담보가 된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지지할 마음이 생기지가 않는다. 주요 공약이라 내던진 ‘HOT 6’에 는 고민의 흔적은커녕 사실관계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예정된 환승요금 철폐를 자랑스레 공약 삼는다. 스스로 자초한 야간잔류 금지 조치에 대한 반성은 아직까지 없다. 정책 자료집이 아직 나오지 않아 미흡하다는 핑계는 접어뒀으면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며, 선거 기간 동안 공약을 보충해나가겠다”는 말은 학생들에게 공약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임대인에게 담보를 요구하는 차용인은 신뢰하지 못한다.

 

 해이해진 태도는 불신을 더욱 부추긴다. 지인이기에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한 것인지, 규칙을 강요하지 않는다. 선거 세칙이나 회칙은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출마 예정자가 선거관리위원회 심의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민망해서 자리를 뜰 수 없었다”니, 이쯤 되면 수줍음이 많은 것이 분명 해졌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본이 정책 자료집 제출 기간을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우리 측의 실수”라고. 수년간 지속된 그들만의 리그는 나태함을 자아냈다. 룰은 증발했고 침묵만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평 화와 함께.

 

  마냥 욕할 수만은 없다. 해이해진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리그를 손수 조성해준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했던 점은 이해하지만 그것에 익숙해져 무감해진 것이 문제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 이 형식적인 표를 제공함으로서 그들에게 안전장치를 둘러줬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그들에게 더 이상 고민은 없다. 위기의식이 없기에 발전도 없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본인들이 사용하기 편한 곳에만 적용된다. 충격요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의 나태함을 본받지는 말자. 이제 차악은 없고 최악만이 남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이번만은 다를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마음 속 한 구석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두통이 여전할 듯하다. 그래도 뽑겠지.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