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작

[오뎅, 떡뽀끼, 순대, 핫도그]

엄마가 또 다시 가출을 했다. 할머니가 침을 튀겨가며 엄마 욕을 한다. 침은 핫도그 반죽 속으로 골인 한다. 할머니는 멈추지 않고 반죽 통 속에 핫도그 햄을 넣고 휘젓는다. 엄마는 가출을 했고, 할머니는 엄마대신 분식집에 나와 일을 한다. 바뀐 것은 그 뿐이지 사실 큰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 우리 메뉴판 이상해. 떡뽀끼가 아니라 떡볶이야.”

이 시점에서 메뉴판이나 들먹이는 모양새가 제 엄마를 닮아 눈치 없고 독한 년이라 욕을 먹는다. 욕을 하던 할머니는 어느새 내 오른 손에 제일 처음 나온 핫도그를 쥐어 준다.

“먹어봐라, 내가 젊었을 적 장사 할 때는 나 보러 동네 온 청년이 다 모여들었다.”

설탕가루가 눈처럼 오소소 손등 위로 떨어진다. 손등을 핥는다. 달다. 뜨끈한 핫도그를 베어 물자 케챱 맛이 훅 느껴진다. 정말 달다. 핫도그를 다 먹기도 전에 피아노 학원에 갈 시간이다. 피아노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내가 처음 피아노 학원에 오던 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벽에 걸린 큰 액자였다. 나는 그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액자 속 드레스를 입은 귀족 같은 여자는 검은색 매끈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눈을 반쯤 내리깐 여자의 속 눈썹은 풍부하고, 틀어 올린 구불 한 금발은 비단 실 같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저번 주에 배운 악보를 펼친다.

사실 나는 그 귀족 여자의 숨겨진 양딸이다. 곧 진짜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올 것이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아름다운 보석이 박힌 마차를 타고. 나는 최대한 엉덩이를 쭉 빼고, 눈을 내리깐다. 피아노 건반 위 손가락을 살며시 올리고 연주를 시작한다.

“박자가 엉망이다.”

볼펜으로 내 머리를 때리고 간다. 흥이 와장창- 깨진다. 한참 신이 났었는데.... 얼굴을 보지 않아도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다. 진한 화장품 냄새만 맡아도 그 쯤은 알수 있다. 피아노 건반 위 손이 눈에 들어온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은 많은 흰 건반들 틈에 듬성듬성 외톨이 같이 끼어 있다. 흰건반들은 자기들끼리만 붙은 채 소곤거리는 것 같다. 검은 건반 마냥 거무잡잡한 손가락. 나는 내가 금발의 하얀 인형같은 소녀 였으면 좋겠다.

가출한 우리 엄마는 나보다 조금 더 검다. 엄마의 고향 사람들은 다 그리 검다고 했다. 베트남. 나는 정말 저 액자 속 여자가 아닌 우리 엄마의 딸이 맞는 것일까. 고민을 하는데 어느새 막내 선생님이 옆에 앉아 말을 건다. 초등학생치고는 정말 잘 치는 거라고, 재능이 있다고 한다. 맞다. 나는 피아노를 잘 친다. 그리고 막내 선생님은 참 착하다. 하지만 가끔씩 선생님께 주눅든 학생처럼 원장선생님의 눈치를 본다. 지금도 그렇다. 우물주물 하던 막내 선생님은 원장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더니 나를 선생님 책상으로 데려간다. 서랍에서는 노란 학원비 봉투가 나온다.

봉투 위 네모난 검은색 칸칸에는 고작 몇 개 찍힌 빨간 도장.

막내 선생님은 바닥에 눈을 맞추고는 나를 슬쩍슬쩍 보며 말을 한다. 이 도장이 한 달에 한번 씩 네모 칸 안에 다 찍혀야 하는데 나는 다 못 찍혔다고. 엄마한테 말을 하면 알거라고 전해달라고. 선생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중요한 일인 듯 하다. 나는 정말로 막내 선생님이 원장선생님께 혼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렇기에 엄마에게 전해주겠노라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가 않다.

“선생님, 지금은 우리 엄마가 안계세요. 가출하셨어요.”

막내 선생님은 얼굴이 창백해진다. 아아, 불쌍한 선생님. 아마 원장선생님께 혼이 무척이나 나는 것이 두려운가보다. 선생님은 눈에 눈물이 고이며 나를 안아준다. 영문은 잘 모르지만 선생님은 참 착한 사람인 것 같다.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선생님이 준 노란봉투를 손에 들고 한손에는 막내 선생님이 준 막대사탕을 먹으며 집에 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빠는 엄마를 찾으러 갔고, 할머니는 분식집에 계신다. 학원 가방을 던져 놓고 양말을 벗으며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 속에는 여행이야기가 나온다. 베트남에 대해서도 나온다. 저 곳에는 엄마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상한 모자에 배를 타고 다닌다. 우리 동네랑은 많이 다른 저 곳에 가면 엄마에게도 친구가 많겠지. 우리 엄마는 이 곳에서 나랑 매일 놀았으니 외톨이는 아니었다. 나도 엄마가 있어서 외톨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나는 아이들과 피부색이 조금 달랐다. 피부색뿐만이 아니었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처럼 비슷하지만 무엇인가가 선명히 달랐다. 내가 느끼는 기분을 엄마도 느꼈을 까? 그래서 가출을 결심한 걸까.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랑 더 잘 놀아주어야지. 엄마는 매일같이 베트남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나는 거기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다. 쌀로 만든 국수가 있다는 이야기, 코끼리 이야기. 아무튼 엄마는 그 곳에 가족이 있다고 했다. 내가 이곳에 있어서 엄마는 자기 엄마를 못 만나는 것일까. 조금 미안하긴 했다.

나는 분명 엄마가 어디로 갔을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참으로 비밀이지만 엄마에게 미안해도 내가 너무 보고싶어 할머니한테만 슬쩍 말해볼까 싶기도 하다. 엄마는 베트남에 갔을 거라고. 그곳에는 엄마의 친구도 가족도 있다. 분명 거기가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만, 자꾸만 든다.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된장국 냄새가 난다. 다그닥 거리는 칼 소리도 들린다. 부엌에서 할머니가 저녁을 한다. 냉장고를 열고는 반찬통을 꺼낸다. 냄새를 맡더니 나물이 쉬었다고 싱크대에서서 반찬 통을 비운다. 반찬 통을 쥔 할머니 손이 쭈글쭈글하다. 마치 저 쉬어버린 힘없는 숙주나물같이 할머니 손등은 힘이 없다. 며칠 전 저 숙주나물을 무치던 우리 엄마는 뒷모습이 정말 예뻤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나는 엄마도 좋고 할머니도 좋다. 엄마 욕을 해대는 할머니 편을 들 수도, 나를 두고 혼자서 가출한 엄마 편을 들 수도 없다. 하지만 엄마가 내 옆에 없는 것은 퍽이나 슬픈 일이다. 고민 하던 찰나,

“우리 똥강아지, 어여 와서 밥 먹어라.”

저녁 숟가락을 뜨면서도 고민에 빠졌다. 엄마는 가출을 해서 아마 자신의 엄마를 보러갔을 것이다. 내가 며칠만 없어도 엄마가 이리도 보고 싶은데 우리엄마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걸. 된장찌개 속 두부조각을 뜨다 말고 할머니에게 큰 비밀을 조심히 말한다.

“할머니, 나 엄마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어디?”

“우리엄마, 베트남에 가면 있어.”

할머니가 픽픽 웃는다.

“돈 없어서 못 간다. 네 엄마가 거기에 무슨 수로 가니 돈도 없는데”

결국 내가 큰 마음 먹고 털어놓은 비밀을 아무 힘도 없이 사라졌다. 노란 봉투 생각이 대뜸 들었다. 잊기 전에 할머니에게라도 전해주어야 겠다. 봉투를 받아든 할머니는 말 없이 눈을 찌푸리고는 조용히 앉아 있다. 한참을 그리 있더니,

“너, 피아노 학원 재밌니?”

“왜?”

“학원 다니기 피곤하면 그만 다니자.”

“안 피곤해. 나 피아노 잘 친대. 나 무지 잘쳐.”

할머니는 끙하더니 밥을 마저 먹는다.

저녁상을 치운 할머니는 현관에 엉덩이를 눌러 붙이고는 마당을 보며 담배를 문다. 할머니의 흰머리만큼이나 하얀 담배 연기는 뭉글거리며 위로 솟구치다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우리 집의 모든 것은 그렇게 있는 잡힐듯하다 사라지는 것 같다. 엄마도, 연기도, 아빠도.

“할머니, 그거 몸에 안 좋대.”

“내가 이 만큼 살았음 됐지, 뭘 더 살려고 그러겠냐”

아빠가 할머니를 닮은 것인지 할머니가 아빠를 닮은 것인지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두 사람 다 담배를 핀다. 아, 우리 아빠는 한 쪽 발이 불편하다. 목발을 짚지만 택시 운전대를 잡으면 목발은 필요가 없었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하얀 장갑을 낀 아빠가 참 좋았다. 가끔씩 술을 먹고 오는 날이면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를 때리기도 했지만 나는 하얀 장갑을 낀 아빠가 멋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없을 때면 아빠 흉을 봤다. 물론 할머니가 엄마 흉을 보는 것에 비하면, 엄마는 조용하고 비밀을 말하듯이 아빠 흉을 봤다. 엄마는 아빠가 위험한 카드 놀이에 큰 돈을 쓴다고 했다. 아빠도 친구와 놀 수 있지 엄마도 참. 하지만 나는 아빠가 친구를 집에 데려 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아빠도 나처럼 데려올 친구가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왠지 우리 가족은 다 피아노 위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검은 건반인 것만 같다. 흰 건반과 다르게 검은 건반들은 서로 붙어 있지도 못 한다. 우리는 언제 함께 모일 수 있을까. 하지만 엄마가 가출하고 아빠마저 엄마를 찾으러 간 지금 할머니에게 아빠는 언제 오냐고 묻기가 어렵다. 어쩌면 영영 둘 다 베트남에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이불 속으로 들어와 웅크린다. 담배연기가 이불 틈새를 비집고 조금씩 들어온다.

할머니의 담배냄새는 독하다.

우리 엄마의 향기는 참으로 달콤했는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 속에는 아까 본 그 텔레비전 속 긴 배가 강을 가로 지른다. 꽃을 가득히 꽂은 엄마는 친구들과 호호거리며 춤추고, 배 위에는 아빠가 있다. 둘은 베트남의 이상한 과일을 가득히 안고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아빠의 다리는 이제 세 개가 아니고서도 잘 선다. 그 곳에서 엄마의 친구들은 아빠에게 살색이 다르다고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엄마의 피부색도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둘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울컥 눈물이 난다.

아침을 차리던 할머니는 내 손에 노란봉투를 쥐어주었다. 도장의 개수는 그대로다. 빈 노란 봉투. 학원선생님께 더 이상 배우지 않겠다고 전해드리라고 한다. 왜? 라고 물어보지만 할머니는 완강하다. 나는 학원 가방에 봉투를 대충 집어넣고는 학교로 간다.

대문을 나서자 이끼가 가득 낀 담벼락 밑에 색색의 큰 꽃이 폈다. 눈을 비비고 보니 요란한 옷을 입은 옆집 언니가 담벼락 밑에서 기대 앉아 자고 있다. 언니는 멋쟁이다. 허연 얼굴에 입술은 빨갛고 눈덩이는 초록색이다. 머리 색 만큼이나 옷도 요란하다. 할머니는 저렇게 안 되고 싶으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흉을 본다. 그렇지만 저 언니는 집에 데려다 주는 남자인 친구들이 매번 바뀔 만큼 인기쟁인걸. 나도 저런 인기쟁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사실 나는 저 언니가 부럽다, 많이. 우리 할머니는 내가 공부를 못 하는 지도 모르나 보다. 공부를 못해도 인기쟁이가 아닌데... 내 살색이 저 언니처럼 뽀얗지 않아서 일까.

학교 정문 문구점을 지나가는 찰나에야 준비물이 생각났다. ‘미술시간에 사용할 칼라 고무 찰흙 준비해오기.’를 알림장에 쓰던 어제 내 모습이 머릿 속에서 뛰어다닌다. 머리가 핑하더니 어느새 가슴까지 내려왔는지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다. 엄마는 알림장을 매일 확인 해주었는데 할머니는 매번 깜박한다. 짝지에게 빌려달라고 해볼까. 너무 깍쟁이라 왠지 눈을 흘기면서 새치름하게 싫다고 할 것만 같다. 그 눈빛을 받으면 정말 견딜 수 없이 부끄러울 것만 같다. 오늘은 정말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다.

 

   
 

미술시간에는 멀뚱히 앉아있었다. 두 손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민망해 손을 책상 밑으로 숨겼다. 힐끔힐끔 주위 아이들이 만드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칼라찰흙 한 통을 책상위에 주고 가신다.

“만들고 싶은 것 한 가지를 만들고 검사 맡아라.”

내가 만들고 싶은 것. 피아노를 만들고 싶다. 검은 색 건반이 모두 붙어 있는 그런 피아노를 만들고 싶다. 검은 색 찰흙을 뭉쳐서 피아노 뚜껑을 만들고, 의자를 만들었다. 흰 색 건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옹기종기 모인 검은 건반을 만들 것 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도 만들어야지. 드레스를 먼저 만든다. 흰 레이스를 늘어뜨린 드레스를. 흰색 찰흙이 모자라다. 작품이 거의 다 완성된 짝지 자리를 슬쩍보니 흰색 찰흙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조금 나눠 달라고 해볼까. 흰색만 조금 달라고 하는 것인데 뭐.

“나 흰색 찰흙 조금만 써도 되니?”

새침한 짝지가 입을 삐죽인다. 흰색 찰흙을 보며 망설이는 듯 하다.

“대신 손 씻고 써. 떼 묻히지마. 나도 쓸 거란 말이야.”

“내 손 깨끗한데.”

“거무잡잡하잖아. 지저분해 씻고 와. 안 그러면 안 빌려줄거야.”

하는 수없이 화장실에 와서 손을 씻었다. 오이 비누로 세 번이나 씻고서 자리에 왔다.

“이제 써도 돼?”

“아니, 네 손 아직도 지저분하잖아. 나 다 쓰고 남은 것 줄게. 잠깐만 기다려.”

깍쟁이가 여간 깍쟁이가 아니다. 치사해도 드레스의 리본을 위해서 조금 참아본다. 드디어 짝지가 남겨준 흰색 찰흙으로 드레스가 거의 완성될 참이었다. 내가 만드는 모양새를 한참을 보던 짝지가 말을 건다.

“너 거짓말쟁이다.”

“나 거짓말쟁이 아닌데.”

“이 사람 너 아니야? 맞지?”

“맞아”

“너 살색 아닌데 왜 살색 찰흙을 쓰니? 갈색을 써야지. 거짓말쟁이야.”

말을 마치기 무섭게 내 찰흙 피아노를 집어 들더니,

“그리고 이거는 피아노지? 피아노 검은 건반은 다 떨어져 있다. 너 피아노 본 적 없니?”

“나 피아노 진짜 잘 친다. 너보다 훨씬 잘 칠걸. 너 지금 피아노 뭐 배우니?”

깍쟁이의 얼굴이 빨개진다. 울그락 불그락 거리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피아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너네 집 가난하잖아.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너네 엄마 도망 갔댔다. 너도 네 나라로 가버려라!”

나는 김치를 잘 먹는데 피부색은 친구들과 다르다.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걸까. 깍쟁이가 울음소리를 높이자 선생님이 달려오신다. 선생님이 오자마자 깍쟁이는 내 찰흙 피아노를 보여주며 고자질을 한다.

“선생님, 이 피아노 이상해요. 피아노 한 번도 본적 없으면서 계속 잘 친다고 거짓말해요.” 선생님은 조용히 내 작품을 보시더니 물으신다.

“피아노를 만들었구나. 그런데 왜 검은 건반이 모두 붙어 있을까?”

“그 피아노는 검은 건반을 위한 것이니까요. 선생님, 저는 피아노를 정말 잘 쳐요. 어른이 되어서는 반드시 검은 건반을 위한 연주곡을 연주할 거에요.”

울던 깍쟁이가 내 피아노를 두 손으로 뭉개버린다. 순식간에 피아노가 찰흙덩어리가 되었다. 기괴한 모양새의 덩어리 속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만 같다. 화가 나서 찰흙을 집어 던져 휴지통 속에 쳐 박아 버렸다. 선생님은 깍쟁이와 나를 모두 혼내신다. 둘에게 방과 후 시간에 남아 반성문을 쓰고 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같이 나란히 앉아있지만 서로의 반대방향으로 허리를 돌린 채 반성문을 썼다.

 

-반성문

제가 잘 못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아노를 잘 치고, 엄마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가출을 한 것입니다. 못된 언니들이 가출을 하지만 우리 엄마는 착합니다. 또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계속 제 나라로 돌아가라는데 속이 상합니다. 다음부터는 싸우지 않겠습니다.

 

이 정도 쓰니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깍쟁이의 반성문을 슬쩍 볼까 싶다가도 이내 포기한다. 피아노 학원에 갈 시간이 다가온다. 가방을 챙기고 반성문을 선생님 자리에 두고 교실을 나왔다. 복도 창문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마치 피아노 건반 같다. 껑충거리며 그늘 진 검은 건반만 밟으며 학교를 나온다. 검은 건반을 위한 연주가 귀에 맴도는 듯 하다.

우리 엄마는 내게 종종 그런 말을 했다. 음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했다고, 우리 딸은 손가락이 길어서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오늘은 왠지 피아노 학원에 가기 참 싫다. 사실 오늘 학원에 가면 더 이상 학원에 가지 못 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생각해 보면 엄마도 가출을 하는데 나라고 어른 말을 다 잘들을 순 없다. 가출은 나쁜 언니 오빠들이 한다지만 우리 엄마도 가출을 하는 것을 보면 썩 나쁜 짓을 아닐 성 싶다. 나도 가출을 해야겠다. 일단 배가 고프니 배를 채우고 가출을 해야겠다 결심한다.

분식집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옆구리 터진 튀김들을 접시에 담아 왔다. 퉁퉁 불은 오뎅을 입에 넣자 흐물거리며 몇 번 씹었더니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없다. 할머니는 내 피아노 가방을 힐끔 볼 뿐 별다른 말이 없다. 떡볶이 볶기에 열중 한다. 배가 어느 정도 차자 가방을 들고는 학원에 가는 척하고 나와서는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빨래 비누를 찾았다. 그 비누가 옷을 하얗게 만든다고 했다. 나는 찬 물에 팔을 넣어 때를 불리고 빨래 비누로 때를 벗긴다. 이렇게 해서 하얀 피부가 되면 나는 옆집 언니처럼 멋을 부려서 친구들을 많이 만들 셈이다. 목 언저리도 씻고 얼굴도 열심히 빨래 비누로 씻는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조금 하얗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수건으로 대충 물을 훔치고는 옆집의 철 대문을 두드렸다.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언니가 나온다.

“언니, 나도 언니처럼 예쁘게 하고 다닐래.”

언니가 깔깔거린다.

“나 예쁘다고 찾는 걸 보면 네 아버지나 너나 같은 피가 맞나보다, 얘”

 

언니는 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왔다. 화장대에는 우리 엄마와 다르게 이상한 화장품이 가득하다. 색깔이 갖가지이고 오묘한 향기도 났다. 언니는 킥킥거리며 내 얼굴에 연신 무엇인가를 발라 주었다.

“자, 다 되었다.”

언니가 거울을 보여주자 거울 속에는 허연 얼굴에 빨간 입술을 한 삐에로같기도 한 계집애가 있다.

“얘, 근데 너네 아버지는 안 돌아온다니? 언제쯤 돌아오니? 아는 거 없니?”

언니는 화장품 뚜껑 하나를 닫으며 한꺼번에 여러 질문을 해댄다.

“몰라. 나 언니 남자 친구들 소개 시켜줘.”

언니는 머리에 꿀밤 한 대를 쥐어박고는 나를 커피를 파는 곳으로 데려왔다. 들어오기 전부터 언니는 이 곳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 언니는 여기서 미스 김이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세련된 느낌의 이름이었다. 나는 구석에서 언니가 내어준 대추차를 홀짝였다. 이 곳에는 사람이 꽤 많았고 언니는 쉴틈 없이 음료를 날랐다. 종종 아저씨들이 언니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미스 김, 저 아이는 누군가?”

“숨겨둔 딸이요, 호호호”

언니의 이상한 농담에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해가 질 즈음이 되자 우리 둘은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김밥을 입에 넣었다. 지금쯤 할머니는 집에 와서 내가 없어진 걸 알아챘을까. 나는 비장하게 내 현재 상황을 전했다.

“언니 나 가출했어.”

언니는 한참을 말을 하지 않고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왜? 누가 엄마가 없다고 놀려?”

“아니. 그리고 나 엄마가 왜 가출 했는지 쯤은 알아.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

언니는 먹던 김밥을 채 다 씹지 못하고 안색이 파리해 진다.

“왜? 왜 가출을 했는데?”

“분명히 친구가 없어서 그랬을 거야. 내가 그 마음을 알아. 엄마와 나는 검은 건반 이야.”

급하게 물을 마시더니 언니가 입을 연다.

“너,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친구들이 놀려? 엄마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언니가... 엄마 해줄까?”

그리 묻고는 빨간 매니큐어 바른 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물어댄다.

“왜? 왜 언니가 엄마를 해줘?”

“네가... 네가 딱해서”

“왜 내가 딱해?”

언니는 남은 김밥 두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집에 가자. 할머니 걱정하시겠다. 나랑 있었다고 하지마. 아버지 돌아오시면 나한테 바로 말해 주는 것 잊지 말고.”

언니 손에 이끌려 급하게 화장을 지우고는 시내에서 동네 입구까지 오토바이로 눈 깜짝 할 틈에 왔다. 언니는 마저 일을 하러 가야 한다며 나를 내려주고는 곧장 떠나 버렸다. 왠지 모르게 언니의 어깨에는 힘이 없었다. 물 먹는 신문지마냥 하늘에 조금씩 어둠이 젖어왔고, 가로등은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마치 파티장에 온 신데렐라의 기분이 이랬을 까. 화장은 다 지워지고 마법이 끝났지만 마음이 들뜬다.

나의 가출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할머니가 욕하기 전에 빨리 집에 돌아가야겠다. 왠지 지금 집에 가면 엄마가 와 있을 것만 같다. 꽃으로 꾸민 하얀 코끼리를 타고서는 과일을 가득 싣고 왔을 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지만 굳이 엄마가 사과한다면 용서할 참이다. 나도 오늘 가출을 했으니까. 아, 그리고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에 다시 보내달라고 조를 참이다. 나는 정말로 피아노를 잘 치니까. 이 다음에 크면 꼭 하얀 드레스를 입고서 검은 건반을 위한 연주를 할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