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어 유난히 나무 끝에 달린 붉은 감(枾)들이 눈에 들어오더니, 주위에서 너도 나도 감을 선물해줘 가족들이 감을 먹느라 행복했다. 비록 상처투성이 못난이들이었지만 살짝 베어 물자 단맛이 퍼지며 정녕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멀리 계신 부모님께도 감을 나눠드릴 수 있어 내심 뿌듯하기까지 했다.

지금 ‘감의 시절’인 게다. 풍성하기는 그 뿐 아니었다. 올해 부대문학상 시 부문 응모작이 무려 180편이 들어 왔다. 시가 죽은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덕분에 심사과정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로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응모작들은 대부분 일상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허나 많은 경우, 감정을 그대로 터트리는 넋두리로 전락하거나, 운문인 척 산문의 행간을 나눈 데에 그치며, 성찰 없는 비유의 의미 없는 열거에 머물러서 시로서의 ‘감(感)’은 되레 천근(淺近)해졌다. 더구나 시의 행간 및 정렬에도 작자의 의식이 개입되어 있다고 믿는 우리는, 왜 그 작품들이 굳이 가운데쓰기 정렬을 취했는지 의미부여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붉은 대추>와 <죄인의 단상>은 눈에 띄는 수작이었다. <붉은 대추>는 새벽에서 아침까지의 짧은 시간 안에 봄을 품은 여름의 설익음과 가을의 성숙을 담아내는 한편, ‘대추’와 ‘비구니’의 생산성을 둘러싼 대조를 축으로 청춘의 성장에 수행과도 같은 정성(精誠)이 긴요함을 잘 형상화했다. <죄인의 단상>은 ‘당신’으로 표상된 부모를 이해하는 것은, 결국 ‘나’ 역시 같은 마음, 같은 시선을 갖는 공명(共鳴)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생경한 비유에 기대지 않고도 표현해내었다. 우리는 이 두 작품을 가작으로 추천한다. 이 밖에 <진실의 부재>는 메타적인 방식으로 습작의 위선과 아양을 도발적으로 표현했지만 시제가 독자의 생각을 폐쇄적으로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시 창작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연주가 음색과 멜로디와 리듬을 조직하여 하나의 온전한 악곡을 재현해내듯이, 시도 언어를 알맞게 조직하고 삶에 대한 성찰과 깨우침을 담아서 일상의 언어가 말하지 않은 무언가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하여 내 마음의 금(琴)을 튕기고 그 파장으로 다른 이의 심금(心琴)까지 울려야 한다.

가작 수상자들을 비롯해 올해 용기 있게 응모한 분들, 그리고 미래의 성실한 시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뒷날 수많은 착오를 받아 안은 ‘제철로서의 시’를 나눠받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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