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필자가 살던 동네에는 버려진 신문지, 폐박스, 고장난 라디오나 냉장고를 리어카에 싣고 다니는 고물상 아저씨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당시에는 냄새나고 지저분해 보이는 모습에 가려져 이분들이 자원을 재순환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분들의 노력으로 아마존 밀림의 나무 한 그루가 덜 베어지고, 지하 광산의 무분별한 개발이 조금이나마 늦춰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물 실은 리어카를 피해 다녔던 어릴 적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재순환될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자원들뿐일까? 이 글에서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의 재순환, 즉 에너지 수확기술에 관해서 설명해볼까 한다.

 

에너지는 어떻게 사용되고 또 버려질까?

에너지 수확기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기계’에 대해 알아보자. 기계의 단순한 정의는 바로 ‘하나의 에너지를 인간에게 유용한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환시켜 주는 장치’이다.

예를 들어 선풍기는 입력된 전기에너지를 인간을 시원하게 해주기 위한 바람에너지로 전환하고, 자동차는 연료의 화석에너지원(석유)을 태워 열에너지로 변환 후, 인간이나 짐을 이동시키기 위한 운동에너지로 전환한다. 기계공학자들이 하는 일은 결국, 이러한 에너지의 변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부를 고스란히 인간에게 유용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에너지 일부는 버려지게 된다.

먼저 앞서 언급한 선풍기를 떠올려보자. 뜨거운 여름날 선풍기 앞에 앉아 스위치를 누르면, 선풍기의 팬이 돌며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이때 팬을 돌리는 모터에서는 불필요한 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선풍기가 한창 돌 때 모터부에 손을 대 본 사람들을 알 것이다!). 또한, 팬이 회전할 때에 공기와의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소음, 진동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선풍기에 입력된 전기에너지는 그 주목적인 풍력 에너지 외에도 열에너지와 함께 진동 및 소음에너지로 변환되어 버려지게 된다. 이번에는 좀 더 복잡한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자동차에 시동을 걸면 엔진이 소리(소음)를 내며 떨기(진동) 시작한다. 또한, 주행 중 에 운전자 쪽에는 다리가 따뜻할 정도로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기가 전달된다. 이는 발생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전기자동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떨까? 인간의 신체 또한 각종 음식(에너지원) 섭취를 화학적 변환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로 변환시켜 주는 ‘기계’로 볼 수 있다(적어도 기계공학자들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섭취한 음식을 통해 공급받은 에너지를 정말 효율적으로 쓰고 있을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에너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는 없으며, 목적한 바와 관계없는 불필요한 움직임, 즉 운동에너지를 낭비한다. 또한,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몸의 항상성을 위해 피부에서는 열이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가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이며, 신발, 가방, 시계 및 각종 장신구 등은 보호나 저장, 정보전달 등 그 주된 목적과는 관계없이 인간의 몸에 붙어서 함께 움직이며 운동에너지나 진동에너지 등을 발생시킨다. 이처럼 우리 인간을 포함한 주위 대부분의 기계장치에서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버려지는 에너지들이 발생하게 된다.

 

버려진 에너지를 어떻게 주워 담을까?

이러한 에너지들을 우리에게 유용한 에너지로 바꾸려면 또 다른‘ 에너지 변환장치’가 개발되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에너지 수확기술은 폐열, 진동과 같은 버려지는 에 너지들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때 적용되는 물리적 현상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연구개발 중인 것은 압전효과를 이용하여 주위에 버려지는 운동에너지(혹은 힘)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 채널을 바꿀 때 사용하는 리모컨과 조명을 켜고 끄기 위한 스위치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리모컨이나 스위치의 버튼을 누름으로써 TV나 조명의 작동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시하는데, 이를 확인한 리모컨이나 스위치에서는 전파나 전기신호가 발생하여 해당하는 기능 작동의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된다. 이때 전파신호 발생을 위해 리모컨에는 소형배터리가 탑재되고, 전기신호를 보내기 위한 전기선이 스위치에 연결된다. 만일 압전효과가 있는 압전소자가 리모컨이나 스위치에 적용되면, 사용자의 ‘버튼 누름’이라는 기계작동에 대한 의사전달 ‘행위’가 곧 전기에너지로 변환되어 리모컨, 스위치에 신호발생 목적으로 필요했던 소형배터리나 외부 전기선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실제로 필립스에서는 2001년 건전지가 필요 없는 TV 리모컨을 개발하여 국제전자제품 박람회에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의 바닥에 압전소자를 설치해 거리정보의 표시에 필요한 전기를 얻어내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지하철 역사에서는 개찰구 바닥에 압전소자들을 설치하여 개찰구나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전기를 생성하고 있다.

한편, 열전효과와 관련된 에너지 수확기술 연구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 엔진과 같은 동력장치 및 각종 전자제품 속 전자 기판에서는 많은 열이 발생하여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데 이 장치에 열을 전기로 바꿔주는 열전소자를 잘 배치하여 전력을 끌어내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독일의 한 회사에서는 센서가 포함된 전자기판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하여 센서 자체의 작동에 필요한 전기를 얻어내는 기기를 개발하여 상용화까지 시도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 때 쓰는 전자기유도 방식을 ‘에너지 수확기술’에 적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미세발전기를 만드는 것인데 진동 등 불필요하지만 주기적인 움직임이 있는 기계장치에 탑재해 자기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전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스위스의 한 손목시계 회사에서는 사람이 걸을 때 팔을 앞뒤로 흔드는 것으로부터 착안해, 손목시계 내에 미세발전기를 설치한, 외부 배터리가 필요 없는 시계를 개발하여 상품화 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 밖에 대기 중에 떠다니고 있는 전파들을 수집하여 전기를 만드는 안테나 시스템, 빛으로부터 전기가 발생하는 광전효과를 이용하는 태양전지, 그리고 생물의 신진대사에너지를 활용하는 시스템 등도 ‘에너지 수확 기술’을 연구하는 공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에너지 수확기술의 의미

에너지 수확기술은 원자력이나 화력발전과 같은 대규모 전력수급기술에 대한 대안기술로 생각하기에는 그 발전규모가 매우 작아 무리가 있다. 또한, 발전된 전력을 한 곳에 축적해 큰 기계를 구동시키는 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그 효과성에 비해 전기를 이동시키고 축적하는 데에 필요한 시설에 대한 부담이 큰 단점 또한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에너지 수확기술 연구들은 대부분 센서 및 미세구동, 신호표시 등과 같이 조그만 에너지가 필요한 주위의 소형 기계장비들에 에너지를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얻어낸 소량의 전기에너지를 바로 인접한 기계장치에 공급함으로써 그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금방이라도 실용화될 수 있을 것 같은 많은 에너지 수확기술들은 아쉽게도 아직 연구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유는 에너지 수확장치의 제작 및 설치에 따른 비용에 비해 얻어낼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의 양이 아직 흡족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대부분의 공학적 연구의 성과는 경제성과 함께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고갈 및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위험에 내몰린 우리 인류에게 ‘에너지 수확기술’은 보다 적극적인 에너지절약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사

 압전효과(Piezoelectric effect) : 물질에 힘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

열전효과(Thermoelectric effect) : 열이 흐르는 물질에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

전자기유도(Electromagnetic induction) : 자기변화가 전기를 발생시키는 현상

광전효과(Photovoltaic effect) : 빛을 받은 물질에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