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인문관 1층 학과방 로비에 멧돼지가 출현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밤 9시경 멧돼지가 큰 숨을 몰아쉬며 로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지난달 26일에는 온천동 주택가에 멧돼지가 나타나기도 했다. 올해 금정산 근방에서 멧돼지의 출몰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줄어들자 야생동물들은 특정지역에 몰려들고, 결국 먹이가 부족해지자 목숨을 걸고 산을 내려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반대 속에서도 재개된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 금정산-천성산 구간 터널이 내년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대구-부산 구간의 고속철도 신설을 위해 천산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금정산의 주봉 고당봉 밑을 이미 지난 2월 금정터널이 관통했고, 천성산의 원효터널 또한 완공을 앞두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에 동물의 서식처를 잃게 되는 것은 두말 할 것 없다. 인간이 17분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역사적인 환경파괴가 또 한 번 이뤄지는 것이다.

  2003년 ‘도롱뇽과 친구들’이 천성산과 많은 생명들을 대표해 도롱뇽을 주체로 공사 백지화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자연물이 소송주체가 되지 못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제개발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지율스님이 공사를 방해해 2조 5000억 원의 국고를 낭비했다며 그릇된 수치를 내놓기에 바빴다. 환경오염에 가장 취약한 개체인 도롱뇽을 비롯한 양서류의 보금자리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었다. 

  천성산-금정산 구간 사업을 진행한 고속철도시설공단 정종환 사장은 현재 국토해양부 장관으로 4대강 사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요란한 홍보와 달리 착공식은 반대여론을 의식했는지 조용히 진행됐다. 지난 10일 대구의 달성보와 구미의 구미보 등 4개보 가물막이 공사를 시작으로 착공했다. 12일부터는 나머지 강정보와 칠곡보, 낙단보, 상주보에서도 공사가 시작됐다. 보는 물의 흐름을 막는다. 수질 정화 같은 기본적인 강의 역할을 차단하며 하천 생물의 기본 서식지가 되는 모래톱은 가라앉을 것이다.

  곧 있으면 낙동강 강바닥을 6m 깊이로 일정하게 파내는 준설 공사에 들어간다. 강바닥에는 다양한 수심마다 다른 개체들이 숨 쉬고 있다. 그러나 강 깊이가 같아지면 먹이사슬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린다. 또한 하천바닥에 작은 경사를 이루는 여울은 유속이 빨라 물이 소리 내어 흐른다. 바닥이 평평해지면 여울도 사라진다. 여울은 공기 유입이 많아지는 구간인데 이 여울이 사라지면 강은 호흡을 멈춰버리게 된다.

  정부의 생태계 보전 계획에도 허점투성이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 ‘겨울철 철새 도래 기간에는 공사를 잠시 중단하면 된다’고 짧은 한 줄의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공사가 시작돼 자연이 파괴된 곳에 철새가 날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바보가 어디 있는가. 정부는 녹색성장, 저탄소형 국가개발, 생태 공간 확대란 번드르르한 이름으로 친절하게 자연을 살해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 가꿔진 생태체험공원에서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즐거울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보금자리가 그들의 눈에는 개발의 공간과 경제 착취의 수단으로 비쳐진다. 오랫동안 도롱뇽, 멧돼지, 여울의 노래 소리를 보고 듣고 싶다. 연달아 터질 산과 물의 신음에 벌써부터 진저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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