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울산·경주를 지나는 빠른 노선 대신 구포·밀양을 경유하는 돌아가는 기차를 선택했다. 시간이 돈인 시대에 굳이 우회로로 돌아가는 까닭은, 구포에서 밀양까지 이어지는 차창 밖 경치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아득한 상념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특히, 석양이 붉게 내려앉고 있는 저녁 시간이라면 가히 환상적이다. 그러다가 문득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말이 떠오른다. 괜한 궁금증으로 네이버 지식을 뒤져본다. 어디에는 영국 역사가 제프리 초서가 처음 쓴 말이라 하고, 어디에는 프랑스 작가 라 퐁텐이 맨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심드렁해진다. 중요한 것은 지금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서울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돌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름다운 차창 밖 풍광이 끝 모를 부아로 변할 즈음, 기차는 어느덧 밀양역을 지난다. 밀양에는 부산대 밀양캠퍼스가 있고, 거기에 점필재연구소가 있다. 점필재는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뒤, 영월에서 처참하게 죽인 비사를 우의적으로 비판하는 <조의제문>을 지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를 당했던 김종직의 호이다. 밀양은 점필재 김종직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것이다. 과거 급제를 통해 당당하게 서울로 올라갔지만, 시골 촌놈 김종직은 영남병마평사·함양군수·선산 부사 등 벼슬살이 반 이상을 영남 전역에서

전전해야만 했다. 노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구실로 그런 부당한 처지를 자위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서울 명문가 출신의 훈구대신이 자신들이 틀어쥐고 있던 중앙 요직을 잠시도 내주려 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김종직의 시 가운데는 중앙과 지방의 현실을 대비적으로 읊은 시편이 많다『. 낙동강의 노래[洛東謠]』도 그 중 하나이다. “천만 꿰미의 돈을 싣고 줄지어 올라가는 배들/ 남쪽 사람들이 이런 가렴주구를 어찌 견딜 수 있겠나/ 쌀 단지 비고 도톨밤마저 떨어졌는데/ 강가 누각에서는 풍악 울리고 살진 소 때려잡네/ 서울서 내려온 사신들은 유성처럼 바삐 내달리니/ 길가에 버려진 해골들 누가 이름이나 물어볼까” 내가 지금 바라다보고 있는 저 낙동강을 김종직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황홀한 풍광에 빠져 있는 데 반해 김종직은 그곳에서 참혹한 현실을 읽어내고 있었다. 낙동강을 유유하게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그 많은 배들은 한가로운 풍광이 아니었다. 극심한 흉년으로 굶어죽은 시체가 나뒹구는 영남 전역에서 긁어모은 재물을 가득 싣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나 긴 죽음의 행렬이었던 것이다.

그런 광경은 낙동강에서만이 아니었다. 김종직의 분노는 충청도 충주의 가흥이라는 역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폭발한다『. 가흥의 역마을[可興站]』이라는 그 작품은 이렇게시작한다. “우뚝 솟은 저 계립령은/ 예로부터 남과 북을 갈라놓았다네/ 북쪽 사람들은 다투어 호사누리며 / 남쪽 사람들의 고혈을빨아먹었지.” 그리고 이렇게 끝맺는다. “강물은 도도히 흐르고 / 밤낮으로 구름과 이내가 끼는구나/ 돛대가 협곡 어귀를 가득 덮으며/ 북쪽에서 내려와 다투어 실어가네/ 남쪽사람들 얼굴 찡그리며 보는 것을/ 북쪽 사람들 누가 알 수 있을까.” 계립령은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계립령은 오래 전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가 되는 고개였던 것이다. 하지만 김종직에게 계립령은 지리적 경계로 보이지 않았다.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 곧 고혈을 바치는 자와 이들 받아 호의호식하는 자를 구분 짓는 상징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남한강에 떠 있는 배들을 바라보며, 김종직은 중앙과 지방의 극심한 대비에 가슴 아파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반도 남단의 도로나 철도는 모두 북쪽의 서울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전국의 인적 물적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 김종직이 태어나고 자란 밀양의 산천과 농민의 삶터를 짓밟고 괴물처럼 우뚝우뚝 들어서고 있는 저 765KV의 송전탑도 모두 북쪽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현실에 맞서 몇 년 째 분투하고 계신 밀양의 이계삼 선생에게 미안한 소주잔을 건네고 싶다. 나 역시 그런 편리한 KTX를 타고, 낙동강의 풍광에 정신이 팔려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으니.

   
 정출헌(한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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