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갓집에서 몇 년 만에 만난 동료 교수가 있었다. 그는 40대 중반의 미혼이고, 지금도 열심히 주말마다 맞선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이 친구는 결혼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인도 스스로 인정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의 하나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이들과도 여러 번 헤어진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유부남의 입장에서는 이혼을 여러 번 한 것에 진배없다. 이를 계기로 요즘 젊은이들을 지칭한다는 삼포(연애, 결혼/출산, 주택구입 포기) 세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정확히 4년 전 우리 학생들의 제주도 졸업여행을 따라갔다가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저녁 바비큐 자리에 다른 부산 지역 대학생들과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다. 그런데 학생들끼리 나누는 대화중에 내가 모르는 용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섹파’였다. 하도 답답해 직접 물어봐야 할 정도로 이 단어는 자주 등장했다. 그 뜻을 앎과 동시에 ‘애인 따로, 섹스 파트너 따로’라는 부연 설명에는 아연실색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어르신 중에 과년한 딸 때문에 고민이라는 얘기도 들은 적 있다. 요즘은 몇 번 만나면 “같이 자자”라는 말이 쉽게 나와, 교회를 다니는 딸이 기겁하면서 남자를 잘 만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 욕망을 쉽게 충족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결혼이라는 올무에 자기를 가둘 필요가 없을 듯싶다. TV에서도 허구한 날 ‘시월드’, ‘고부갈등’, ‘장서갈등’을 소재로 토크쇼가 늘었지 않은가? 우리 집사람조차 시자(媤字) 붙은‘ 시금치’를 싫어하고, 시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산’을 싫어한다.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성관계에서 피임은 자연스러울 것이며, 이 영향으로 출산을 기피하는 것도 덩달아 이해가 된다. 결국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 집 마련은 물론 힘든 직장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세태의 잘잘못을 윤리적으로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존속을 위해 후손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기 위해선 안정적인 출산이 유지되어야 하고, 건강한 육아를 위해 부모를 포함한 가족이 요구되며, 그 가족의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서 부모의 직업은 필수다. 사회가 이런 것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삼포 세대에게 “그래, 셋 다 포기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다. 먼저, 외적인 조건을 따지는 연애는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존재로서의 사랑’과‘ 소유로서의 사랑’을 구분했다. 내 애인이 “키가 컸으면 좋겠다”, “얼굴이 잘 생겼으면 좋겠다”, “능력이 많으면 좋겠다”, “성격이 좋으면 좋겠다” 등등은 모두 소유로서의 사랑이다. 상대방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과시하거나,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방편일 뿐인 것이다. 자신이 홀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랑은 위험하다. 스스로 선 자가 연애할 자격이 있다. 둘째, 부모의 등골을 파먹는 호화 결혼은 포기하는 게 마땅한 자녀의 도리다. 서울 유명호텔에서의 결혼은 억 단위라 한다. 전셋집과 혼수까지 감안하면 결혼비용이 못 잡아도 2~3억 원 든다는 게 실감난다. 자신이 평생 갚아나갈 생각이 없다면 친지들 불러 모아 조촐하게 결혼하라. 세계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은 서구에서 어떻게 결혼식을 올리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셋째, 주택은 장기적인 안목과 재테크 기술이 없다면 당장 구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이다.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

이런 식의 포기라면 삼포세대에게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겠다. 끝으로 처칠이 옥스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로 했다는 말이 삼포세대에게 딱 맞는 말로 와 닿는다. 처칠은 3분 정도를 요구한 축사에 단 세 마디만 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상기 부경대 교수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