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의 문화 행정이 관변 시대로 역주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산문화재단민간 이사장 임명 문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상영 취소 요청 등 문화계에 대한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의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부산문화재단 민간 이사장 임명에 관한 건이다. 부산 지역 예술인들의 반대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서병수 부산시장이 독단적으로 이사장을 임명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09년, 부산문화재단은 이전까지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맡았던 이사장직을 민간인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문화행정의 패러다임을 공공에서 민간으로 이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후부터 추진된 것으로, 마땅한 인물이 없어 시행하지 못하다가 새로운 대표이사취임에 맞춰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부산시는 민간 이사장제 도입으로 문화재단의 전문성과 자율성 강화를 기대했다.

문제는 지난달 13일 부산문화재단 초대 민간 이사장으로 최상윤 동아대 명예교수가 임명되면서 불거졌다. 지역 예술인들이 새로 선임된 최상윤 이사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최 이사장의 임명에 대해 부산의 문화예술 및 시민단체와 대학 교수들은 모두 ‘부산지역문화사에 기록될 참사’라고 입을 모았다. 남송우(부경대 국어국문 교수) 전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최상윤 씨를 임명한 것은 민간 이사장 제도를 도입한 근본적 취지와 전혀 맞지 않다”고 전했다. 민간 이사장 제도는 문화적 소양을 갖춤과 동시에 부족한 재원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다. 이사장은 이사회를 이끄는 의장으로, 재단 운영 전반과 문화 정책 수립에 관한 자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최상윤 이사장은 앞서 재단 대표이사 공모에 세 차례 낙선한 바 있다.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송우 전 대표이사는 “현재임명된 최상윤 씨는 자금 조달이 용이한 기업인도 아닐뿐더러, 재단 대표이사 공모에 낙선한 인물이 대표이사 임명권을 가진 이사장직에 앉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 A씨는 “부산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누구보다 뼈가 굵은 최상윤 씨가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에서 3번이나 떨어진 것은 이유가 있지않겠냐”며 “부산의 문화예술계를 분열시키려고 하는 인물이 이사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 이사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산지회(이하 부산민예총)에 대한 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며 예술계 편 가르기에 호응한 바있다.

최상윤 이사장의 임명 이후 부산민예총을 포함한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은 기자회견과 1인 시위, 성명서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임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부산시민센터에서는‘ 위기의 부산문화, 관변의 시대로 퇴보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토론의 발제를 맡은 생활기획공간 통 송교성 대표는 “임명 철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행동하기 시작했다”며 “부산문화예술계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부산시 측의 인식을 이번 기회를 통해 바꿔놓고 싶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정희준(동아대 생활체육) 교수 역시 부산시를 비판했다. 정 교수는 “서병수 시장은 인사를 사유화하며 시민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임명이 철회되지 않고 유지된

다면 재단 내부의 갈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새로운 이사장을 선임하도록 요구할 예정이다. 부산민예총 반민순 사무처장은 “아무리 토론회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해도 시는 반응이 없이 불통”이라며 “이번주 수요일(5일)에 모여 범시민대책위원회 구성 준비를 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지난달 14일에는 부산지역 14개 대학의 교수 171명이 ‘부산문화재단의 이사장을 원래 취지에 맞는 인물로 재선임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에 참여한 우리학교 이상금(독어교육) 교수는 “현재 부산문화재단은 초창기로, 부산 문화의 미래와 방향을 잘 설정해 기초를 잘 다져야 할 시기”라며 “문화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갖고 간섭하려 드는 부산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민간 이사장 건이 더욱 공론화돼서 부산 시민 모두의 부산문화재단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서병수 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취소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문화예술인 B씨는 “관객이 보고 판단해야 할 영화를 왜 이념 대결의 대상으로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부산국제영화제의 미래를 걱정했다. 지난달 22일,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가 문화에 개입하고 문화가 정치에 복무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지금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문화는 부산시장의 것도 아니고, 정치인의 것도 아닌, 시민의 것임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이렇듯, 부산의 문화예술계는 거침없이 역주행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진오(예술문화영상) 교수는 “부산문화재단과 <다이빙벨> 문제 등은 모두 부산의 문화가 관료주의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라며“ 관료주의를 타파해야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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