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사회지도층 인사가 본의 아니게 암에 대한 정의를 하신 것을 들었다. ‘규제는 암덩어리’라고. 사실 이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자로서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암세포를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무서운 질병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암세포는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매우 정교하고 효과적인 규제를 없애거나, 무시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본래 세포들은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듯하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원래는 단세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특성인 듯하다. 그러나 여러 개의 세포들이 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해오면서, 개체는 개별적인 세포가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세포 자신만의 생존을 추구하는 것을 억제한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온코진

우선 암이 발생하기 위한 상태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미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 무분별한 흡연,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암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실제 우리 몸 안 세포 내 잘 정돈되어 있는 DNA의 서열을 바꾸는 돌연변이를 유발한다. 우리의 세포 안에는 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촉진하는 유전자와 이를 억제하는 유전자들이 상호견제하면서 균형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상호견제가 무너지면 암으로 진행되어간다. 이 중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들을 발암유전자(Oncogene, 이하 온코진)이라고 하고 평소 정상적 규제와 조절을 받는 상태를 프로토온코진(Proto-Oncogene, 이하 프로토온코진)이라고 한다. 프로토온코진은 세포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호에만 반응하여 세포를 증식시키나, 유전적 변이에 의해 규제와 조절을 벗어난 온코진은 외부의 신호와 무관하게 항상 세포를 증식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 인간의 암에서 가장 많은 변이를 보이는 K-Ras 유전자의 경우, 단 하나의 염기서열의 변화만으로도 항상 활성화된 상태로 세포의 증식을 유발한다. 그러나 프로토온코진이 변이에 의해 온코진으로 바뀌었다고 곧바로 암이 발생하진 않는다.

   
 

 암 발생을 억제하는 암 억제 유전자

암 발생이 억제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세포에는 다시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규제하는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치가 바로 암억제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들이다. 암억제유전자는 온코진이 발생하면 이를 감지하여 그 세포의 성장을 멈추게 하거나, 또는 아폽토시스(Apoptosis)라는 세포 자살을 유발하여 암이 될 만한 세포를 제거한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를‘ Gatekeeper Tumor Suppressor Gene’이라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몸속에선 암이 될 만한 세포들이 발생하고 이것들을 암억제유전자가 제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암억제 유전자는 p53으로 프로토온코진이 활성화되거나 우리 DNA에 손상이 유발되면, 그 세포를 늙게 만들거나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우리가 여름에 피부를 태우는 경우에도 p53은 기능을 하여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피부색을 검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피부가 타는 것이 싫다고 p53을 제거해 버리면 우리는 평생 아주 다양한 종류의 암에 걸리면서 고생을 할 것이다. 실제 유전적으로 p53이 변이된 ‘리-프라우메니 증후군’환자는 20대 후반부터 위암, 폐암 등 다양한 암으로 고통을 받고 결국 암으로 사망한다. 즉 일부 규제가 불편하다고 없애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DNA 속에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 자체를 억제하고 관리하는 또 다른 암억제유전자군이 존재한다. 이들을‘ Caretaker Tumor Suppressor Gene’이라고 한다. 우리의 DNA를 구성하는 30억 개 이상의 염기쌍은 복제과정을 거치면서 딸세포로 나누어져 전달된다. 이때 복제과정 중 실수가 생기거나, 또는 염색체가 나누어져갈 때 잘못 분배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있다. 이러한 이상은 곧바로 딸세포의 돌연변이로 작동하고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 이 과정에서 프로토온코진 뿐 아니라 이를 제어하는 종양억제유전자에도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세포에는 이러한 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DNA Repair System’이 존재하고, 이와 관련된 유전자들 역시 암억제유전자에 속한다.

 면역계와 기저막은 암을 억제하는 또 다른 규제

그러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세포의 이기심을 이것만으로는 규제하기 힘들때가 많은 것 같다. 우리 몸에선 이상이 발생한 세포에 대해 면역세포가 반응하여 제거하고, 주변에 있는 정상세포들도 암세포가 이동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암세포의 이동은 우리 몸 속 각 조직에 존재하는 기저막에 의해서도 제한되며 억제된다. 임상적으로 암세포가 이기저막을 뚫지 않은 경우엔 수술로 비교적 쉽게 제거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몸에선 철저한 규제 속에서 암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 억제하여 전체 개체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규제가 제거된 상태 암 증후군

그렇다고 개별적인 유전자 한두 개가 없어진다고 해서 다른 조절인자들이 있다고 안심하면 절대 안 된다. 우리의 DNA에는 한 쌍의 유전자가 존재하는데, 만약 우리가 부모로부터 암억제유전자 중 하나라도 기능이 없는 것을 물려받으면 우리는 반드시 암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명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양쪽 유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실제 졸리는 BRCA1 유전자의 변이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

즉 아무리 작은 규제라 해도 기능이 상실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규제를 무력화시켜 암이 발생시킨다. 실제로 DNA Repair를 조절하는 BRCA1 유전자의 하나의 변이는 곧 다른 하나의 BRCA1 유전자의 변이를 쉽게 유발시키고, DNA의 변이를 연쇄적으로 유발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또 다른 유전자에 변이를 유발하여, 여러 가지 규제를 뚫고 암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세포주기를 억제하는 pRB가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3 5세의 어린아이의 안구에서 암이 발생하고, 이후엔 뼈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서 암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암세포와 자동차

우리는 앞에서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와 억제하는 유전자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엑셀레이터, 브레이크와 연료가 있어야 한다. 엑셀레이터는 온코진이고 이를 제어하는 것이 브레이크인 종양억제유전자이다. 연료는 텔로미어와 영양분인데, 이 부분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알아보자. 만약 자동차 급발진처럼 엑셀레이터가 운전자가 밟지도 않았는데 작동하거나, 또는 브레이크가 작동

하지 않는다면 자동차는 제어 불능으로 무한질주를 할 것이다. 암세포도 암억제유전자가 기능을 못하거나 온코진이 발생하면 무한질주를 하는 자동차와 같아질 것이다.

 규제의 강화 = 암의 예방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모두 건강하기 기원하고, 현재까지 여러분들이 암에 안 걸렸다면 여러분들은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큰 문제 없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턴 건강도 여러분의 책임임을 명심하고.

마지막으로 암을 억제하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절제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규제가 없는 곳에 이기적으로 자신의 증식만 생각하는 암이 발생하니까 말이다. 이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실험동물을 이용한 암 연구
* 최초의 발암유전자는 src으로 닭의 근육종에서 확인되었다.
* 암 억제나 발암유전자의 생체 내 기능은 유전자 조작을 한 쥐 실험으로 확인한다.
* 특이하게도 개의 피부암은 개끼리는 전염이 된다.

 

   
박범준(분자생물) 교수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