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관 <사학 1>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존재다’ 나는 그런 우월의식을 지니고 살아왔다. 믿음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꾸준히 해온 독서 덕분에 또래들이 잘 모르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회운동에 발을 들이면서 또래와 나 사이의 괴리감은 더 커졌다. NL이 어쩌고 PD가 어쩌고를 주워섬기는 고등학생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전직 운동권이 방황하다 발견한 곳이 부대신문사였다.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멋들어진 명분도 있었다. 그렇게 망설임 없이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신문사는 내 생각만큼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글쓰기는 자신 있다고 믿었지만 글과 기사는 달랐다. 취재를 할수록 모르는 것은 늘어났다. 취재원의 발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아야 했다. 글로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당장 내가 맡은 일을 하는 것도 버거웠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지 않도록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다.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넘겼고, 부족한 부분은 내 능력이 아니라 성실함의 문제로 돌렸다. 나는 끝까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솔직하게 고백한다. 기자가 된 후에도 나는 내 알량한 자존심과 우월감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부끄럽게도 지금도 그렇다. 부대신문 기자라는 이름에서 나는 자부심과 우월감이 뒤섞긴 묘한 감정을 느낀다. 타인에게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낙수는 다가왔다. 낙수를 쓴다는 건 더 이상 수습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어느새 신문사에서 8개월을 보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루하루 버텨내는데 급급했던 8개월이었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그러나 동시에 작은 희망을 본다. 상처받지 않고 버텨내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내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쓰리지만 인정해야 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느낌과 함께 나의 한계와 마주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남들보다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겠다. 잘하는 것만큼 못하는 게 많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다짐한다. 정기자라는 이름을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 나만을 위한 기사를 쓰지 않겠다. 부끄러운 고백에 이은 낯간지러운 다짐이다. 이 부끄러움과 낯간지러움을 안고 정기자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딛는다.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나 달라졌다’고 느낄 것이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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