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경(사학 석사 수료)
르네상스가 꽃피웠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 스스로를 예언자라고 칭하던 괴승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예언자라고 등장한 것도 황당한데, 더욱 황당한 것은 르네상스기 피렌체의 유수한 예술 작품들을 ‘허영의 모닥불’로 불태워버렸다는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보티첼리 역시 그의 추종자로, 허영의 모닥불에 자신의 예술품을 불태우려 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르네상스기에 피렌체에서 꽃피운 화려한 문화를 한순간 잿더미로 만드는 광신자로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보나롤라는 수많은 예술품들을 잿더미로 만들기는 했지만, 피렌체에 공화주의의 횃불을 밝힌 인물이기도 했다. 이 시기 피렌체는 공화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메디치가의 통치 아래 있었다. 국부 코지모가 정권을 잡은 이후 대인 로렌초 그리고 그의 아들 피에로에 이르기까지 메디치가는 반세기 넘게 피렌체를 지배해왔다. 메디치가의 이러한 행보는 비판받아야 마땅했지만, 메디치가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러한 경향은 약화되었다. 그러다가 1494년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을 계기로 메디치가가 추방당하자 사보나롤라는 이것이 신의 계시이며, 신이 피렌체에 자유로운 공화국이라는사명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사보나롤라는 <피렌체 정부론>에 과거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가에 대한 장문의 비판을 담았다. 그는 이 글에서 그들이 완전한 권력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더 기민하게 사람들을 통치해왔다고 주장했다. 바로 정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직에 자신의 편을 세우는 식이었다. 그가 보기에 피렌체에 공화국이라는 정부의 형태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공화국이라 할 수 없었다. 결국 메디치 하의공화국은 부패하고 폭군에 의해 통치되었던 셈이었다.

공화국은 라틴어로‘ res publica’, 즉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공화국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공공의 재산이므로, 공화국을 지키는 것은 곧 공공선을 지키는 것이다. 공화국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부의 적으로부터도 자유를 지켜야 한다. 사보나롤라가 비록 마키아벨리처럼 전사의 덕에 기대어 공화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의 불화를 틈타 소수 혹은 개인이 ‘공공의 것’을 독점하는 것을 경계해야 공화국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보나롤라는 결국 반대세력에 의해 화형당하고 말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피렌체 최후의 공화국도 그의 이상을 이은 것이었다. 공화국을 부패시키는 폭군의 출현을 경고하던 설교와 글은 현재의 공화국이 무늬만 공화국은 아닐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에서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政體)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에 안주하여 정치에 대해 한 발 물러서서 멀찍이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자본주의, 개인주의의 물결 속에서 공공선보다는 사익을 더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공화국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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