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산자락을 밟으며
 
사 년을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그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선 그들의 얼굴에서 읽는 여유 없음이
서로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달려 왔는가
 
너희와 나의 삶은 금정산 산자락아래 보았던
은빛 낙동강처럼 눈부실 필요는 없다
단지 금정산 산자락을 밟으며 깊은 숨소리 달래면 된다
여유 없는 얼굴을 펴면 족하다
 
제자들아 여유 없는 삶이 느껴질 때
금정산 산자락 밟으려 다시 오렴
그는 너희와 나를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말이다
 
1995년 11월

 

   
 최용석(통계) 교수

 

 

내 블로그(blog.daum.net/musigma)에서 오래전에 적어둔 졸작 시 <금정산 산자락을 밟으며>를 꺼내어 보았다. 맨 아래 시를 적은 날짜는 정확하게 19년 전의 과거로 나를 이끌고 갔다. 난 30대로 젊었고 대학의 교수가 된지 횟수로 딱 4년이 지날 무렵 의욕이 넘쳤고 열심히 가르치고 제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노력하였던 것 같다.

강의노트도 한 학기에 다 마치기에도 벅찬 분량을 준비하곤 했다. 학생들의 행사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제자들과 학교 대운동장 트랙을 릴레이 하였고 갑자기 뛰다보니 근육이 뭉치고 넘어지고 그래서 웃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였다. 식은 김밥을 흔쾌히 먹으며 막걸리 한잔 걸친 탓에 청춘일 때의 호기를 자랑하며 윗몸 일으키기며 팔씨름도 하였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제자들에게 질 줄이야.

1교시 내 과목을 듣기 위해 아침부터 숨 가쁘게 등교하여 앉아 있는 학생들의 눈망울을 보면 안쓰러워 매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면 이들을 강의실 밖으로 불러내곤 하였다. 긴 호흡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코발트색 하늘을 쳐다보며 기지개를 편 학생들의 얼굴에는 조금 전 강의실에서 모습과는 달리 함박웃음과 편안함이 가득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한층 가볍고 그들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강의실에서 딱딱한 질문과 내 생각을 제자들에게 전달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였다. 다시 말해서 늘 일상적이고 형식적인 강의에서 일탈을 했을 때의 정신적 여유로움이 묻어있었다.

삶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경쟁사회 속에 치열하여 남 보다 앞서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금정산 자락을 밟으며 옆의 친구들의 거칠고 깊은 숨소리를 들으며 그들과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추어야 그들의 생각과 삶을 느낄 수 있다. 그래야 너와 나의 비전과 꿈을 공유하게 된다. <CEO 징키스칸>에 따르면 비전과 공유는 어떨 때 가능한가에 대한 답이 주어져 있다. ‘열린 사고를 할 때다.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은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고 저마다 꿈을 꾼다. 내 꿈도 있고 남의 꿈도 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꿈이 있다. 하지만 어떤 꿈이 나만을 위한 꿈이라면, 나를 위해 남에게 희생과 봉사와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꿈의 공유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이젠 나의 강의를 듣는 제자들과 비전과 꿈을 공유하기 위해 한번 씩 금정산 산자락을 밟았던 이런 풍경은 옛 추억처럼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나에게 여유가 없음이다. 제자들에게 항상 여유를 강조하였건만 나의 여유 없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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