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조 원.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부채를 모두 합친 금액이다. 지자체의 부채에 지방공기업 부채 52조 원까지 더하면 100조 원이 넘는 상황. 지자체의 재정에 비상등이 켜진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자치법 효력이 정지된 지 30년 만에 1991년 지방선거가 실행되며 지방의회가 구성됐다. 이후 1995년 광역기초단체장 선출이 시작되며 본격적인 지방자치의 시대가 열렸다. 현재 민선 6기가 출범해 지자체를 이끌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자체의 재정 상태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의 부채는 3조 원, 인천광역시 부채는 4조 원이 넘는 상황이다.

 

지자체의 무리한 사업 추진이 부메랑 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자체 부실 재정의 대표적인 요인을 지자체의 무분별한 사업 추진이라고 지적했다. 좋은예산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태일(고려대 행정) 교수는 “일부 지역에서 지자체장이 무리하게 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자체의 부채가 커진 것”이라며 “부산김해의 경전철, 인천시의 아시안게임, 전남 영암군의 F1 등이 바로 그 예”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1월, 감사원은 지방재정을 총괄하는 안전행정부와 광역 기초자치단체 등 52개 행정기관을 상대로 시행한 감사에서 54건의 방만한 예산 집행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시의 경우 경전철 이외에도 거가대로, 백양터널 등 개발 사업을 진행한 이후, 민간기업에 300억 원이 넘는 적자 보전 금액을 지급했다. 시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2천6백억 원 규모의 부산 오페라하우스 사업은 지난 1월 감사원에게 주의 통보를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지자체의 전시성 행정과 방만한 운영이 지자체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시는 중앙정부, 집행은 지자체가?

지자체 나름의 입장도 있다. 서울특별시 박원순 시장 등 지자체장들은 지방 재정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 내에서 써야 할 돈은 많은데 거두는 세금은 늘지 않아 재정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또한 지자체의 불안정한 세수 확보가 지방자치제 발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섬수 정치사법 팀장은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8대2인 상황이지만 최근 지자체의 주요 재원인 담배세도 국세 중심으로 개편됐다”며 “정부의 국세 중심 정책이 지자체의 과세 자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고 보조 사업의 악영향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국고 보조 사업은 국가가 지정한 특정 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지자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언뜻 보기에는 지자체에 도움이 되는 제도로 보이지만, 오히려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고 보조금은 명목상 지방 재원일 뿐, 중앙정부의 기획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지자체에는 자율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 구균철 연구위원은 “지방 재원을 중앙정부가 지정한 보조 사업에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집행을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지만 정작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사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고보조사업은 2003년 533개에서 현재 1,000여 개로 증가했으며 이 사업이 늘어날수록 지자체의 예산 재량권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지방의회 권한 협소해 권력 감시 어렵다

지자체의 재정 집행에 대한 견제가 어려운 현재의 지방 행정 체제에도 문제가 있다. 지방 정치에 중앙 정치의 영향에 크기 때문이다. 허철행(영산대 공직인재학부) 교수는 “정당의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의 공천 과정에도 중앙 정치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초의원이 지자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일 경우 직접적인 비판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비판과 견제 없이 지자체장에게만 예산 편성권과 인사권이 집중되고 있다. 의원의 전문성 부족도 ‘강 시장-약 의회 구조’를 심화하는 요인이다.

지방의회에 자치 입법권이 있지만 그 권한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지방 조례는 헌법 등 상위 법안을 위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국 지방의회의원의 1인당 연간 조례 제개정 건수는 평균 1.05건에 불과하다. 부산의 경우 0.83건으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허철행 교수는 “형식적으로 지방 선거는 치러지지만 지자체에게 실질적인 자치 행정, 재정, 인사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지방자치제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 시민단체, 학계가 모두 나서서 중앙 정부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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