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전어의 계절이다. 전어의 학명은 Konosirus punctatus인데, punctatus는 전어의 옆면에 찍힌 점을 의미한다. Konosirus는 ‘고노시로’라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식 대신’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옛날 일본에서 한 영주가 노인의 외동딸에게 청혼을 했다. 딸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노인은 영주에게 딸이 갑자기 죽었다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딸 대신 관에 전어를 넣고 태웠는데, 이때 사람 타는 냄새가 났다고 한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까지 있다. 사실 시집살이에 지쳐 집 나간 며느리가 고작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될까? 위키피디아의 덕후 버전 ‘엔하위키 미러’에서는 전어 굽는 냄새를 시어머니 화장(火葬)하는 냄새로 오해했을지 모른다는 탁월한 해석을 제시한다.

과학자들에게 가을은 노벨상의 계절이기도 하다. 길거리에 전어 굽는 냄새가 나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매년 10월 첫째 주, 하루에 한 분야씩 한국시간으로 대략 오후 7시쯤 공표된다. 그래서 저녁 식사로 전어를 먹으며 발표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파란색 LED를 개발한 일본인 과학자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LED 개발?” 얼핏 들으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알려면 인간 눈의 특성을 알아봐야 한다.

눈의 망막에는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단백질 ‘옵신’을 가진다. 옵신은 ‘레티날’이라는 분자와 결합해 있는데, 빛을 받으면 레티날의 구조가 변하며 생화학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그 결과 뇌에서 빛을 인식하게 된다. 옵신은 레티날이 반응할 빛의 파장을 결정한다. 인간의 경우 붉은색(564나노미터), 초록색(535나노미터), 파란색(433나노미터), 세 가지 빛을 흡수하는 옵신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RGB로 불리는 빛의 삼원색이다.

초록색과 붉은색 LED는 옛날에 개발되었으나 파란색 LED는 한동안 개발되지 못했다. 파란색을 얻기 위해서는 GaN 기반 반도체가 필요한데, 그 제어에 많은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빛의 삼원색을 섞으면 백색이 나온다. 파란색이 나온 뒤에야 비로소 조명용 백색 LED의 상용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LED는 백열전구보다 효율이 20배 좋고, 수명이 100배 길다. 전기의 25%가 조명용으로 쓰인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것은 분명 중요한 발명이다.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에도 LED가 쓰인다.

인간이 세 종류의 색을 볼 수 있는 데 비해 파충류, 조류, 심지어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네 종류를 본다. 곤충의 경우 자외선까지 보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눈에 흰색의 꽃이 곤충에게는 화려한 색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포유류는 파충류보다 더 진화했다고 생각되지만, 단지 두 종류의 옵신만을 가진다. 초기 포유류는 포식자의 눈을 피해 살아야 했기에 대개 야행성이었다. 눈이 좋을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을 포함하는 영장류는 옵신을 하나 더 갖게 되어 세 개가 된거다.

결국 파란색 LED의 개발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만 중요한 발명이다. 네 종류의 옵신을 가진 파충류 입장에서는 아직도 하나의 색이 남아 있다. 다른 포유류에게는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의 노벨물리학상은 문제가 있는 것일까? 노벨은 수상원칙에 ‘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고 못 박고 있다. 인간이 기준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다. 한 노벨상 수상자는 원한다면 자기 메달을 한국에 팔겠다는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지금처럼 노벨상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 붓기 전에 우리가 진정 인간을 위한 과학을 추구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는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고 쓰여 있다. 전어는 돈만 주면 살 수 있지만, 노벨상은 그렇지 않다. 

김상욱(물리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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