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시청자들의 이목을 잠깐 끌고 마는 게스트나 보조 캐릭터와 같은‘ 감초’ 역할에서 벗어나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그들의 입장에서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 외국인이 주목을 끈 사례들은 예전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외국인 등장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외국인 장기자랑’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에 인기를 끄는 예능프로그램 출연 외국인들은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임에도) ‘한국’, ‘한국적인 것’을 표방한다. 이를테면 한국 남성들의 ‘트라우마’인 병영생활이나 입시지옥을 겪는 한국 학생들의 학창시절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고 한국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한국인이라면 응당 고민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결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생활 방식 때문에 발생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외국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흔한 레퍼토리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한국 거주 외국인의 수가 급증하는 저간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17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있고 한류를 비롯한 문화 콘텐츠의 해외 수출로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이 개선되면서, 한국은 점점 다민족·다문화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단일민족이라는 근대의 신화가 뿌리 깊지만, 더 이상 외국인들은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가까이 있는 이웃이라는 인식이 차츰 퍼져가고 있다. 따라서 낯설면서도 낯익어야 하는 그들의 사고방식, 가치관에 대해서 흥미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 또한 늘어가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유엔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이 한국에 “심각한 인종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정부 차원의 개선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피부 색깔에 의한 차별적 인식이 완강하고,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국가의 외국인들에 대한 백안시(白眼視)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은 그저 한국을 자신의 입맛대로 향유하는 ‘악(惡)’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점점도를 넘어서고 있다.

외국인 등장 예능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와 같은 이중적 태도에 침묵한다는 데 있다. TV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친근함과 애정을 과시할 때에야 비로소 한국인들에게 ‘ 인정’받을 수 있다. 벽안(碧眼)이라도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인‘처럼’ 생각하기를 묵시적으로 요구받는다. 본국에서 본인들이 살아왔던 생활습관과 가치관을 버리고 한국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따라야만 그들은 낯설지만 낯익은 타자로 살아갈 수 있다. 외국인은, 한국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한국인처럼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올바른 대답을 할 때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 농촌 결혼이주여성 등 한국의 경제력을 ‘절도’하고 혈통을‘ 더럽히는’ 존재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라져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 카메라가 흰 피부의 외국인을 비출 때,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까만 피부의 외국인을 비출 때, 카메라의 성능은 같을지 몰라도 그 내포된 담론이 같지는 않다.

한국인에게 외국인이라는 미지의 타자는 한국사회와의 동일화가 불/가능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외국인에게 ‘Do you know 시리즈’를 시전함으로써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인정하기와 인정받기 사이의 이 끝없는 진자운동. 외국인을 한국인으로‘만’ 받아들이려 하는 것도, 한국인스러움을 외국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받으려 하는 것도 둘 다 입맛이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예능 프로그램이 진짜 보여주어야 할 것은 외국인 출연자들이 한국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에 의해서 밝혀지는 한국인들이 지금껏 놓치고 있었던 삶의 속살이 아닐까? 

 손남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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