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을은 좀 미안하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익은 가로수 열매가 시멘트 도로 위에서 사람에게 짓밟히기 때문이다. 부산대학교 참나무들은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 밟힐 새가 없으니 다행인가? 요즘 토실한 참나무열매가 한창 툭 또르르 떨어지는 중이다. 사실 참나무는 없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통칭하여 참나무라고 하는데, 참나무는 가문해에 더욱 많은 열매를 맺어 주린 사람 배를 채워주었기 때문에 ‘참’ 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학교 길섶에는 유독 열매가 통통한 상수리나무가 많은 편이다.

등산길을 오가며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삼아 줍는 사람도 많다. 아슴푸레한 아침녘에는 도토리가 잘 보이지 않은지 손전등까지 들고 다니는 사람, 나무등줄기를 심하게 차거나 가지 부러뜨리기를 서슴지 않고 도토리를 채취하는 사람, 긴 나뭇가지로 낙엽 속에 숨은 한 톨까지 남김없이 주워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 유형은 여럿이지만 공통점은 도토리를 남김없이 검은 봉지에 담기 위해 눈알을 번뜩인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지역주민의 도토리 채취를 막아주면 좋으련만 학교 경비아저씨도 이에 적극 동참하기도 한다. 맨홀 아래 빠진 도토리를 줍기 위해 무거운 뚜껑까지 기꺼이 들어 올리면 어느새 경비원의 주머니도 두둑해져있다.

어디 가을철 도토리뿐이랴! 이른 봄 우리 학교에는 수령이 제법 되는 매화나무 꽃이 곱다. 꽃이 많이 피는데 노랗게 익은 매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늘 의아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초 여름날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 두 해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노부부가 노련하게 각 매화나무를 돌며 청매실을 수확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대학본관 옆 살구나무 역시 휴일에 운동장으로 놀러온 사람들이 죄다 훑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모두들 참 그악스럽다.

미리내골에는 청설모가 살고 있다. 부산대학교에 부임해 왔을 때 보았던 다람쥐는 자취를 감추었다.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지 만, 청설모는 그렇지 않다. 청설모는 추운 겨울에도 먹이활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겨울 마른 가지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청설모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직접 도토리를 주어다가 도토리묵을 쑤어먹는 맛도 쏠쏠할 것이고, 제법 비싼 값에 팔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에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도토리와 과실이 교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생필품이다. 한줌의 도토리에 눈을 희번덕거리기보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가을 교정을 즐기면 참 좋겠다.

더욱이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워 가는 것은 교정의 정상적 성장을 저해하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야생열매는 먹잇감이 부족한 겨울철 야생동물들의 중요한 저장식량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곤충들의 산란장소로도 유용하게 쓰인다. 거위벌레의 경우 새끼 유충을 도토리 속에 넣어 살게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또 동물들은 열매를 먹이로 삼는 대신 종자를 멀리 퍼트리는 역할도 해주지만, 인간들의 열매 채취는 나무 종자를 계속 줄어들게 할 뿐 이다. 교정의 수목관리도 더욱 철저히 하고, 도토리를 비롯한 나무열매 채취를 금하는 방책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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