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8월, 독일의 한 회사에서 업무규칙을 개정해 발표했다. 무려 ‘하루 8시간 근무제’. 당시 독일의 법정 근로시간이 10시간이었으니,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회장의 말이 발단이 됐다. 그는 직원들을 노동자가 아닌 동료라 불렀고, 동료들의 근무 조건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마침내 이를 실현한 회장. 다른 곳에 비해 짧은 노동시간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수장 밑에서 노동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해당 회사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책임감에서 비롯된 공고한 신뢰, 그 결실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 메이커인 로버트보쉬(Robert Bosch GmbH)의 이야기다.

  2014년 10월, 우리학교 총학생회는 침묵하고 있다. ‘정성어린 소통’을 외쳤던 이들이 맞는지 가히 의심스럽다. 과도한 업무와 피로감에서 오는 변심이라 생각하기에는 그 수준이 심각하다. 중앙운영위원회 회의 보고는 손에 꼽을 정도, 월말결산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학생휴게실은 더욱 가관이다. 담당 부서인 학생과와는 협의도 없이 땅따먹기 하듯 남자휴게실 공간을 차지했고, 학생과가 제안한 여자휴게실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있다. 학생과 학교를 잇는다는 말이 우스울 지경이다. 가교의 역할은커녕 양쪽 귀를 모두 틀어막고 있다. 가까운 곳은 그리 눈에 밟히는지, 수천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 학생회실 리모델링은 그 어떤 사안보다 빠르게 처리됐다. 학생회는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됐고, 총학생회 카페는 그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신뢰는 메마른지 오래다. 공약집의 수많은 문구는 그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이를 꾸미는 화려한 수사들이 무색할 정도다. ‘스무 살의 정치를 꿈꾸’던 그들은 그 말마따나 정치인들 의 수사를 닮아가고 있다. 여자휴게실 성추행 사건의 책임회피는 시작에 불과했다. 비슷한 내용의 게시물로 연일 학내를 뒤덮으며 소통을 말하지만, 일방적인 사업 홍보는 소통이 될 수 없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자기만족에 그칠 뿐이다. 학생들은 이미 정치만큼이나 학생회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런 상황에 서 ‘대화’하지 않고 ‘얘기’하고 있다면, 소귀에 경 읽는 꼴이다. 혹여 소통하고 있다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자기합리화에 매몰돼 까막눈이 된다면, 거기서 끝이다. 말뿐인 소통에 신뢰를 보낼 수 없다.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를 관람하고 싶지 않다. 방관은 대답 없는 메아리를 만들 뿐이다. 이대로는 혹자들이 국정감사에서 주고받던 쪽지와 마찬가지다. 신뢰 없는 조직에 발전을 바랄 수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두 달동안의 기회가 남아 있다. “신뢰를 잃는 것보다 돈을 잃는 것이 낫다”는 로버트 보쉬의 말을 유심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이미 표를 던지며 신뢰를 보여줬다. 얻는 것이 아니라 되찾는 것이다. 임기 내내 내리까기만 했으니,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나. 책임 없는 신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초심으로 돌아 가, 선거 전부터 외치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2만과 함께 소통하고 바꿔나가야 합니다’

  소통, 책임, 신뢰. 그제야 진짜 시작이다. 늦지 않았다. 다시 움직여야 하다. ‘당신’이 아닌  ‘우리’의 슬로건을 위해. 레디, 액션. 

 이광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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