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손상, 법원 위신저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은 후 이를 비판한 김동진 판사에 대한 법원의 징계 사유다. 그런데 이건 심각한 적반하장이다. 판사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저하한 사람은 진정 누구일까? 부정의(injustice)에 눈감기보다 정의를 위해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며 용기 있게 비판의 날을 세운 김동진 판사일까 아니면 지난 대선부정과 관련된 일련의 판결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무죄 선고하여 부정의를 정의로 둔갑시킨 판사들일까?

법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고, 정의는‘ 올바르게 행위하는 것’과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주는 것’과 연관이 깊다. 이처럼 정의를 사고하는 방식은 두 분야에서 정의론을 발전시켜왔는데, 법 영역과 사상 영역이 바로 그것이다. 법 영역에서 정의론은 범법, 상해, 손실 등을 행한 사람에게 어떻게 응분의 대가 즉, 정당한 처벌을 받게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반면, 사상 영역에서는 사회정의 즉, 분배정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거쳐 오늘날 정의는 대체로 분배적 정의, 인과응보적 정의, 시정적 정의로 분류되고 있다. 분

배적 정의는 사회 희소자원에 대한 분배 정의를 말하며, 인과응보적 정의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인과응보적 정의를 지칭한다. 반면, 시정적 정의는 어떤 행동으로 인해 야기된 손해에 대한 보상을 추구하는 정의를 의미한다.

법적 정의는 또한 형식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로 구분된다. 형식적 정의는 정의로운 법적 판단은 만인이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와 규칙을 적용하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스포츠 경기와 마찬가지로 법적판단에서도 공정한 절차와 규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 정의가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법적 판단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독재자가 자의적으로 만든 비민주적인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변호인 선임과 삼심제 같은 형식적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법적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 판단이 정의롭기 위해서는 ‘실질적 정의’가 함께 요구된다. 실질적 정의는 법적 판단이 형식적 정의뿐 아니라 ‘내용적 정의’와‘ 결과적 정의’도 함께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적 판단의 내용과 결과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형식적 정의가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법적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박근혜정부 들어 형식적 법치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가 아닌 ‘사이비 법치주의’라는 변종 법치주의를 목격하고 있다. 사이비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를 유지하고 있지만, 몇몇 법관들이 살아있는 권력에 굴복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법적 정의를 도외시한 채 범죄를 정의로 탈바꿈시켜주는 거짓스런 판결 상황을 일컫는다. 사이비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의 가면 속에서 ‘실질적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가짜 법치주의이며, 비양심적 법관들이 자의적인 인치(人治)로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허위 법치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이비 법치주의가 법관의 품위손상과 법원의 위신저하를 초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법질서와 법권위에 대한 우리 공동체의 경멸과 인정거부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판사의 행동은 정의로운 것이지 처벌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 거악을 놔두고 거악을 비판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 법의 정의를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법은 실질적 법치주의와 법적 정의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 그런데 법이 실질적 법치주의와 법적 정의를 상실하는 순간 우리 공동체에서 법의 권위와 법에의 자발적 복종은 약화되고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게 법질서의 아노미이고 법권위의 실종이다.

지금 우리 공동체는 부정선거로 정당성을 상실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인 박근혜 정권을 위해 법적 정의가 사라지고 법이 죽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부당한 정치권력이 정치질서뿐 아니라 법질서와 법권위를 함께 훼손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법의 권위와 법에의 자발적인 복종은 법관들의 폐쇄성에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법의 공정함과 정의로움에서 연유한다. 법적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우리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법을 민주적인 통제 하에 두어 사이비 법치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이게

법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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