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영 편집국장

  학생들은 학교를 뛰쳐나와 거리로 달려든다. 최루액이 도시를 휘감는다. 물대포가 난무하고 고무탄이 날아다닌다. 무장경찰들과 시위대가 대립하고 있다. 반대세력의 시위도 이어진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하던 SNS는 접속이 차단된다. 거리에는 노란리본이 휘날린다. 지금, 홍콩의 모습이다. 눈앞에 보이던 홍콩의 민주주의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1997년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며, 20년 후 행정장관 직선제와 독립적 사법제도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껍데기만 남았다. 중국의 변심일까, 본심일까. 지난 8월 중국 정부는 행정장관 후보를 중국당국이 추천하는 인사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판사선출에도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계속되는 중국의 압박에 물러설 곳이 없다 생각한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홍콩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봉착해있다.

  5·18의 데자뷔일까.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도심, ‘민주주의’를 향한 울림. 홍콩의 지금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오버랩된다. 독재체제를 공고히하려는 시진핑, 이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홍콩 시민들. 크게 다를 바 없다. 광주민주화운동 역시 시위의 무력진압을 위해 확대한 비상계염령을 도화선 삼아 시작됐다. 결말은 어땠을까. 당장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잔인하게 진압됐지만 제5공화국 정권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고, 민주세력 각성의 계기가 되며 독재정권이 물러나는 데에 큰 몫을 해냈다. ‘한국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는 홍콩 시민의 말이 맴도는 지금, 감히 한번 가늠해본다. 과연 그들의 결말도 해피엔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들이 한국을 본보기로 삼는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쟁취에 실패했다. 모양뿐인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데자뷔를 외치는 우리에게 응답하는 것은 1980만이 아니다.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 무장경찰들과 시위대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노란리본이 광장을들였고, 반대세력의 야만적인 시위도 이어진다. 간접세 증가가 서민 증세가 아니라는 말장난은 ‘오늘의 유머’다. SNS 검열은 놀랍지도 않다. 달라진 것이 없다. 겉모습만인 민주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는 것조차 힘들게 한다. 민주주의의 망령이 한국과 홍콩을 오가고 있다. 1980과 2014가 공존한다. 24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중대한 기로에 봉착한 홍콩 시민들에게, 감히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사실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기로에 서있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민주주의의 도금이 벗겨지고 있는 지금, 그네들은 철저히 재단된 논리로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지배하의 시민들은 온통 무감해지고, 모두 외면해버린다. 관심이 없는 곳에는 비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그네들에겐 기득권을 위협하는 단순한 교통사고일 뿐이었다.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본질에 분노하지 않았다. 허울 좋은 말로 국가를 내세웠지만 진심은 딴 곳에 있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없었고, 국가주의만이 존재했다. 스스로의 모습을 직시할 때가 왔다. 혹시 당신도 민주주의의 망령과 손잡으며 무관심으로 치장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제자리걸음이다. 현실을 보지 못하는 한 내일은 없다. 2014를 걷는 지금, 여전히 198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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