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도시형 장터가 떠올랐다.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거나 특별한 개발 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지역 경제와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의 사정은 다르다. 부산 어디에도 주민이 주축이 된 도시형 장터는 없는 상태다. 지자체가 도시형 장터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형장터 불모지, 부산

  부산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도시형 장터는‘ 지구인 시장’이 유일하다. 지구인 시장은 수공예시장과 벼룩시장이 합쳐진 형태의 도시형 장터로 지난 2010년부터 꾸준히 개최되고 있다. 버스킹 공연, 네일아트, 캐리커처 등 체험형 판매도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의 재능 또한 상품이 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구인 시장 외에는 도시형 장터가 전무한 실정이다. 부산 곳곳에서 벼룩시장이 개최되고 있지만, 지역적 특색도 특정한 테마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산시청이 연 9회 정도 ‘시민참여나눔장터’를 개최하고 있지만, 자원 활용에 중심을 둬 재활용품 교환·판매만 허용돼 일반적인 벼룩시장에 가깝다. 관공서, 백화점, 카페 등의 주최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이 또한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고 있어 도시형 장터라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재개발 구역에 신바람 불러온 장터

부산과 달리,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에서는 지역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도시형 장터가 떠오르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우사단 마을이 대표적인 사례다. 언덕 위로 이어진 좁은 이면도로. 좌우로 늘어선 낡은 벽돌집, 오래된 다방과 미용실. 시장이 열릴 정도로 활기차던 이곳은 바로 옆 이태원역 일대가 상권의 중심지가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뉴타운 재개발 지구로 설정된 이후 쇠퇴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우사단 마을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장미가 그려진 계단에서‘ 이태원 계단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계단장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고 있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사단 마을 골목 전체로 시장이 확대된 상태다. 주민 공동체도 다시 형성되고 있다. 시장의 활성화와 더불어 마을 신문 <월간 우사단>도 발행된다. 마을 주민들과 예술가가 어우러져 시장을 개최하고 마을을 가꾸는 것이다. 우사단 마을 주민 김봉순(서울시 용산구, 67) 씨는 “아무것도 없는 산동네였는데 시장이 생기니까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며 “시장 열리는 날이면 골목에서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공동체 ‘우사단단’이 운영하고 있는 도시형 장터 ‘우사단 계단장’의 모습이다. 우사단로 10길을 중심으로 열리는 이 장터는 재개발지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장터’에 대한 몰이해가 불모지를 만들다

부산시청도 마을 공동체 회복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도시형 장터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시 마을만들기지원센터는 작년 8월부터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품 마켓’을 열고 있다. 시의 주도로 마을 단위에 장터를 여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운영 시스템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하다. 실제로 시민들이 직접 신청해서 열린 장터는 단 3번에 불과해 마을 공동체 형성을 위한 사업이라는 사실이 무색한 상황이다. 주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장터에 나와 물건을 판매하는 주민에게 지원금이 지급되지만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돼버렸다. 주민들이 장터를 직접 가꾸려는 의지 없이 단순히 지원금을 얻기 위해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자체의 지원금이 사라지면 그 장터는 없어질 수밖에 없다.

장터 개최를 시가 주도하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시장을 운영하여 지역별 특성이 반영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장터가 지역 고유의 축제가 아니라 일회성 이벤트로 그쳐 어떤 마을에도 정착하지 못하게 됐다.

사업 계획이 변경되면서 그나마 마을 장터 개최도 어려워진 상태다. 당초 정기 개최를 계획하고 추진된 사업이지만, 예산문제로 비정기적으로 시행됐다. 하반기에는 오프라인 장터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부산시 마을만들기지원센터 허찬 담당자는 “하반기에는 온라인에서만 벼룩시장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내년은 어떻게 진행될지 논의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부산에서 5년째 도시형 장터를 운영하고 있는 심동석 씨는 지자체가 도시형 장터에 대한 이해 없이 실적 위주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공서는 시민들이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시장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며 “다른 시장을 그럴듯하게 흉내 낼 것이 아니라 현장 상황에 맞춰 주민들이 직접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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