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직접 경험했고, 누군가는 교과서를 통해 알게 됐을 아나바다 운동. 아나바다 운동은 1990년대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경제 불황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비 형태였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다시 쓰자’던 이 운동이 도심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꽃피고 있다. 바로 ‘도시형 장터’다.

  

전국 최고령 도시형 장터에 가다

“이 정도면 싼 거예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벼룩시장 ‘서초토요문화벼룩시장’. 매월 둘째 넷째주 토요일이면 약 1km 길이의 방배천로가 모두 장터로 변한다

“에이 그래도 조금만 깎아줘요~”

“그럼 천 원만 주고 가져가요”

지난 8월 찾은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에서는 사람들의 흥정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km 남짓 이어진 보도블록 위를 지나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 모두 서초토요문화벼룩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 시장은 1998년 아나바다 운동에서 출발하여 휴장 기간 없이 운영되고 있는 역사 깊은 장터다. 중고 의류가 주 거래 대상이며 먹거리는 판매할 수 없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인터넷을 통해 판매자 신청 및 추첨이 이뤄지고 개별 판매자에게 일정한 구역이 배정되는 등 변화도 있었다. 대표적인 도시형 장터로 자리 잡았지만 고유의‘ 나눔과 기부’ 문화는 이어져 오고 있다. 판매수익금 중 일부를 이주노동자, 결식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서초구민들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ㄱ(서울시 서초구, 45) 씨는 “10년 째 이곳에서 판매자로 활동하고 있다”며“ 시장 때문에 시민들끼리 교류도 활발하고 주변 상가들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 장터로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각지에서도 이곳을 찾아온다. 시장은 서초구 홍보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송주혜(경기도 성남시, 21) 씨는 “인터넷을 보고 처음 방문했는데 주민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서초구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고 전했다.

 

요즘 장터에는 개성이 있다

도시형 장터가 인기를 얻으면서 도심 곳곳에 다양한 도시형 장터들이 생기고 있다. 특히 서울은 도시형 장터의 메카다. 장터마다 특색도, 지향점도 모두 다르다. ‘광화문 희망나눔장터’, 대학로의 ‘마르쉐@’에서는 농부가 직접 기른 농작물, 유기농 먹거리를 판매한다. 덕수궁길의‘ 돌예공’, 이태원 ‘우사단 계단장’에서는 예술품·창작품을‘, 홍대 프리마켓’에는 빈티지 옷을 살 수 있다. 밤에 열리는 장터도 있다. 강남구‘ 블링 나이트 플리마켓’이다. 이곳은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도시형 장터는 정기적으로 시민들이 모여 직접 물건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장터로,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소비 형태를 지향한다. 도시의 특성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하고, 특정한 테마나 지향점이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벼룩시장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활력을 주며 지역민들의 소통에도 도움이 된다.

시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권성숙(서울시 서초구, 50) 씨는“ 직장 쉬는 날 나와서 구경도 하고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장터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도심 속 장터의 의미를 강조하며 활성화를 기대하는 시민도 있었다. 이유욱(서울시 양천구, 55) 씨는 “이곳 장터는 한철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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