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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스며드는 과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를걸요”-장대익 과학철학자·진화학자
  • 이혜주 대학⋅문화부장
  • 승인 2014.10.06 20:41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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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과학철학자·진화학자

  이 사람, 꿈에서도찰스 다윈을 외칠 것 같다. <다윈의 식탁>, <다윈의 서재>, <다윈의 정원>까지. 저서에서부터 그에게 진화학과 다윈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학문적 방황을 겪고 맞이하게 된 진화생물학과 과학철학은 이제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됐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지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장대익 교수를 만나 이 시대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연구실은 책으로 가득 차 있어, 마치 책으로 만든 벽 속에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과학고등학교 출신이다. 소위 말하는과학 영재로서 학창시절을 보냈나

  저는과학이 아니면 나는 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징가Z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죠. 중학교 때 공부를 꽤 했으니까 당연히 과학고등학교에 가야겠다고 맘을 먹었어요. 그런데 가자마자 쇼크를 받았어요. 공부 꽤나 한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선행 학습을 다 하고 온 거에요.정석을 다 떼고 온 친구들부터 3번 이상 보고 온 친구까지. 고등학교 때 진짜 과학 영재가 어떤 존재들인가를 알게 됐죠. 솔직하게 저는 공부 조금 잘 했던 정도였지 영재가 아니었거든요. 나와 실력적으로 차이가 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좌절도 많이 했고, 한편으로는 인생을 재밌게 하는 것은 단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그때 어렴풋이 느낀 것 같아요. 일반고를 갔더라면수학을 해야겠다’,‘ 물리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 친구들을 보면서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죠. 그때 저는 어쩌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과학기술 즉 엔지니어링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본래 전공은 기계공학이었는데, 과학 철학을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단 정부의 영재 육성 정책에 의해 2년 만에 마치고 카이스트에 갔죠. 기계공학이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대학에 와서는 더 심해졌죠. 공부를 안했어요. 철학 및 종교와 관련한 책을 읽고 지적인 방황을 했죠. 방황의 핵심은 종교였어요. 당시 기독교인이었거든요. 믿음에 대한 정당성. 신앙에 대한 정당성을 고민했죠. 신학적인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보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쉽게 말하면 운동권 기독교인이죠. 실험실에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래밍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평생을 저렇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사회로 눈을 돌렸죠. 그러면서 책도 많이 읽게 된 것 같아요.

  3학년 때 제 인생을 바꿔놓은 과학철학이라는 수업을 듣게 됐어요. 토마스쿤의 <과학혁명>을 읽고 소논문을 쓰는 것이 과제였죠. 그 책을 읽으면서 엔지니어가 아니더라도 과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에서 소설가에 대해 연구하고 작품을 비평하는 문학 비평가가 있듯이 과학에서는 과학자의 삶과 정체에 대해 철학적 탐구를 하는 사람이 있는거죠. 토머스 쿤이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쇼킹했어요. 이러한 분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쇼킹했고 토머스쿤의 생각도 쇼킹했어요. 과학은 알고리즘에 따른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활동이라고 알고 있지만 어떠한 패러다임에 기반한 활동이라는 것, 도그마에 기대 어떤 것이 옳으니 확장하자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개안의 경험을 했어요.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알게 됐죠.

 

과학 철학에 입문한 뒤 진화생물학을 연구했고, 인지과학까지 연구 분야를 넓혔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나

  철학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세련되게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학문이에요. 그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종교철학을 공부했고, 종교 다원주의 문제도 알게됐죠. 수많은 종교들을 비교하는 것인데 그것이 실존적인 문제에요. 학문적으로 신앙을 배우다 보니 본래 믿던 신앙이 흔들리더라고요. 점점 무신론자가 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됐어요‘. 과학에서는 이런 실존주의적인 물음을 던지는 학문이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는 과학이 천문학과 진화학 딱 두가지더라고요. 그 중 진화학이 종교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 진화학을 공부했죠. 이후 서울대에 오신 최재천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됐어요. 최 교수님이 가르치는 진화생물학, 동물행동학이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진화론을 제대로 공부해서 생물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무작정 최 교수님을 찾아가서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다고 부탁드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죠(웃음). 이러한 모든 과정이 지금까지 사회생물학, 영장류학, 인간진화론 등을 함께 연구하는 계기가 된 거죠. 그 시간동안 무신론자가 됐고, 진화학자이면서 과학철학자라는 이상한 조합의 직업을 갖게 됐어요.

 

과학철학을 철학의 한 종류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다. 과학철학이 과학을 하는데 있어 왜 중요한가

  대학을 나오고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전문가이기 이전에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갖는 것이거든요. 지식인의 가장 최소한의 조건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역사와 철학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 분야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흘러왔는지, 그러한 작업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지식인의 기본이죠. 그런데 잘 배우지 않아요. 의학만 봐도, 의학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철학적인 문제가 무엇이고, 사회적인 함의가 무엇인지를 배워야 하는데 그저 전문지식만 배우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파장을 갖고 있는지 상상이 못하는 거죠. 아주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들만 양산되는 거예요.

  추격자로서 존재할 때는 문제가 없어요. 앞서 가는 사람들만 따라가면 되니까. 그런데 선두에 섰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되는지 아이디어가 없는 거예요. 선도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흘러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잖아요. 주어진 문제만 잘풀었던 사람은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지만 그 다음 단계가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은 물론 사회와 학계 모두.

  한국사회가 합리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과학이 중요한 거예요. 사람들이 인문적인 성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과학적 세계관의 중요성은 간과해요. 과학을 이해하고 인문학적인 요소와 어떻게 물려있는가, 사회적 상관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과학철학이지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과학기술 성찰, 과학기술 사회학, 철학, 역사죠. 그래서 저는 모든 과학자들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과학은 무엇이며,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회가 성숙하려면 어느 분야만 튀어나와 불균형을 이뤄서는 안돼요. 과학기술 분야는 어떻게 보면 다른 것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을 돈 벌어주는 것, 실용적인 것, 국가 경쟁력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죠. 사실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알지도 못해요. 관심도 없어. 사회 전체가 과학 자체가 스며들어있지 않고 위로만 툭 튀어나와있는 것이죠.

  과학이 스며들었다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말이에요. 과학은 사실 그 어떤 활동보다 합리적인 활동이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 주제를 놓고 반론을 제기하려고 노력하고, 검증을 시도하고, 오랜 시간 맞다 생각했던 이론들이 몇몇 타고난 사람들에 의해서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이런 지적인 활동은 지구상에 과학 외엔 없어요. 인간이 만든 지적인 활동 중에 가장 겸손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은 정말 교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과학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라고 생각해요. 과학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며 실용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과학이 문화로서, 합리적 세계관을 정립하는 역할을 해야 되요.

 

<다윈의 식탁>에는 진화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등장하며, 실제로 논쟁하는 현장이 담겨 있다.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진화학을 배우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실제로 진화학자간의 논쟁도 많았고, 실제로 대가들을 만나서 느낀 것도 많았죠. 실제로 논문으로 논쟁한 경우도 있었어요. 이러한 논쟁은 무척 맛있는 논쟁이에요. 맛있는 논쟁이 있고 맛없는 논쟁이 있는데 대표적인 맛 없는 논쟁이 창조론 진화론 논쟁이지요. 빤한 논쟁이고, 대등한 논쟁이 아니에요. 그런데 현대진화론에서는 적응에 대한 다른 관점, 이타성의 적용 등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이잖아요. 어렵겠지만 재밌게 써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누구나 빨려들 수 있도록 스토리 라인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가장 쉬운 방법이 실제로 논쟁하는 것을 중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인물들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의 대화를 상상했어요. 이전의 다른 글쓰기를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실험이었죠.

  곧 증보판에는과학은 논쟁이다라는 부제를 붙였어요. 책을 통해 바로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과학이 그저 개발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학 내부에는 엄청난 논쟁이 있고 그 논쟁을 통해 굴러간다는 것.

 

논쟁이 이뤄지는 자리가식탁이라는 데서 착안해 식탁하다라는 동사를 만들었고, 써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식탁하는자리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식탁은 참 생동감이 넘치잖아요. 식탁에서는 밥을 먹다가도 진지한 이야기 나오면 밥알이 튀어나오면서까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밥 먹는 것을 멈춰가면서 이야기하기도 하죠. 일종의 지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일방적인 지식의 전수는 있어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은 익숙하죠.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일은 많이 없어요.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은 서로 평등하다는 이야기이고, 어느 주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부족한 것 같아요.

  보통 학회가 끝나고 나면 연사들과 함께 밥을 먹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식사자리에서 학회 때 등장한 이야기를 꺼내면장 교수, 밥 먹는데 밥맛 떨어지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사실 밥먹을 때 무장해제하고 서로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들까지 막는 것이죠‘. 식탁하다는 말이 유행하진 않았지만 식탁을 통해 어떤 지식이든 진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비장한 단어에요. 많이들 써주면 좋을텐데‘, 우리 식탁합니다라고(웃음).

 

과학을 전혀 접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과학과 관련된 강의를 얼마나 듣고 졸업하는지 통계를 내보니 서울대학교는 1.5개 정도라고 하더군요. 대부분 교양 수업이죠.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과와 문과로 구분되어있는 고등학교 때부터 담을 쌓아왔고, 대학에서 1.5개 정도의 과학 강의을 듣고 졸업하면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과학은빠이빠이에요. 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수식을 알고 수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세계관을 얻는 과정인데 그 부분을 경험하지 못하고 평생을 사는 것이죠. 뇌를 살펴봤을 때는 한쪽 부분은 기능하지 않는 상태로 사회를 사는 거예요. 조금 과한 말일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는 일종의 지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요.

  1980년대 미국에서 방영됐던 칼 세이건 다큐멘터리 <코스모스>가 지난해에 다시 리메이크를 됐어요. 지식과 애니메이션을 더욱 보강됐죠. 단지 그게 놀라운 것이 아니에요. 놀라운 건 그저 다큐멘터리인 그 방송을 보기 위해 TV 앞에 온가족이 모인 그들의 자세예요. 야구 경기도 아니고, 시청률 무척 높은 드라마도 아닌데 그것을 보기 위해서. 게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9시 뉴스에서 무려 30분 간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다큐멘터리에는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이 나타난 과정이 들어있어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 인간이 왜 여기 존재하는가에 대한 실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말이죠.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자세죠. 우리 사회는 아직 너무 멀었다는 생각을 해요.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고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인문학적 통찰을 얻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에요. 이러한 경험을 하면 앞으로는 과학을 놓지 않죠‘. 과학은 나와 많은 상관이 있는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 자체도 무척 합리적으로 바뀌는 거죠.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이혜주 대학⋅문화부장  how4157@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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