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가끔은 혜택과 행운을 누리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성인으로서의 첫발을 대학에서 내딛는다는 것은 큰 혜택이자 행운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사회보다는 관용적이고 여러 유보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숙한 성인이 되어가는 길이 순탄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학생이 법제적인 성인으로서의 자유 속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성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남편이나 아내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 같은 착각과 안일함에 다가올 혼돈의 물결을 감지하지 못한 채로 법적 성인이 되었다. 물론 그들이 유행가 가사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견디며 성장할 것임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보의 시간이 되어주는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최대한의 준비를 이루기를 바란다. 그래서 후회되지 않는, 지향점이 있는 인생의 길을 가기 바란다.

현재 한국은 만 19세 이상을 법적 성인으로 규정한다. 세계 각국의 성인 나이가 대부분 18세인 것을 보면 그리 빠른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예를 살펴보면 한(漢)나라 때는 20세, 서진(西晉) 때는 16세, 북위는 15세, 수(隋)나라 때는 21세였다. 상대적으로 평화 시기에는 20~21세를 성인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는 15~16세로 성인의 법제적 나이가 낮아졌다. 고대 국가에서 성인 나이를 규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가 부가하는 여러 의무조항을 이행시키기 위해서였다. 무거운 세금의 납부에서 부역까지 국가에 대한 성인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대 중국 왕조는 국가가 개인에게 토지를 지급한다는 명분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징세를 시행했는데 실제 토지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정액의 세금은 거두었다. 현대 국가에서 성년 규정의 목적이 의무보다는 권리를 보호한다는 차원이 강하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캠퍼스 안의 초보 성인들은 보호도 받으며 또 자신을 지키기도 하며 유보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 성숙한 성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말이다. 자본의 위력이 크고 보이는 결과물을 중시하는 요즘 금전과 취업이 모든 걸 해결할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이지만 그것들이 인생의 목표일 수는 없다. 이제 스스로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명제를 찾아야 한다. 부모의 우산 밑이 아니라 나의 우산을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주제와 연관되지 않아도 <사기열전>의 첫 장 백이(伯夷)열전과 둘째 장 관중(管仲)열전을 종종 읽히곤 한다. 분량은 몇 장 되지 않지만 끊임없이 토론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삶의 원칙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우정에 대해….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범의 한 예를 찾아볼 수는 있다. 이것이 젊은 시절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나의 빛나는 우산을 만들기 위해 이전의 훌륭한 우산을 지닌 수많은 이들의 선례를 가볍게 보지 말자. 열심히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찬란하게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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