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자리를 비운 둥지에 뻐꾸기 한 마리가 다가온다. 둥지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익숙하게 알 하나를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그 뒤엔 빠르게 알을 낳고 유유히 사라진다. 돌아온 둥지 주인 뱁새는 ‘금이야 옥이야’ 남의 알을 품는다. 이 알은 뱁새의 알보다 먼저 깨어나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뱁새의 알을 등에 업어 던져버린다.
‘탁란’이라 불리는 이 생태계의 한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뻐꾸기의 무자비함만은 아니다. 왜 뱁새는 자신의 알과 뻐꾸기의 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까. 완벽한 탁란을 위해 뻐꾸기가 숙주 새의 알과 구분되지 않는 색의 알을 낳도록 점차 진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뱁새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뻐꾸기의 알과 다른 색의 알을 낳도록 진화한다. 기생 새는 숙주 새의 알을 흉내 내고, 숙주 새는 피해를 막기 위해 새로운 모습의 알을 낳는 ‘진화적 군비 경쟁’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경우 진화적 군비경쟁은 주로 뻐꾸기와 다른 새들, 즉 종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한 종은 종 내의 군비경쟁이 어느 종보다 치열하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인간이라는 종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언제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때문에 다른 이보다 더 좋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바꾼다.
이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공진화하는 자연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수법은 더 정교하고 악랄해졌다. 상대를 밟고 올라서는 것은 당연시되며 경쟁에서 낙오한 자는 실패자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소외 당한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욕망과 탐욕, 정욕, 식탐, 시기심 등 어느 종교든 죄악으로 지목하는 이러한 덕목들은 현 시대에서 경제를 이끌어 가는 가장 근본적인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경쟁을 통해 진화가 이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화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개체가 생존하는 기본 원리를 갖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현존하는 생물들은 자연에 대한 적응 경쟁에서 이긴 승리자들이다. 하지만 이는 이러한 진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는가’와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진화하고 있으며, 그 진화를 위해 그동안 무엇을 잃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00대 1이건 1000대 1이건 이러한 경쟁이라도 뚫어내야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기성세대들은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다는 생존 논리를 주입한다. 가끔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달콤한 말로 위로하면서. 그 결과 남들보다 더 나은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대행업체에 손을 벌리기도 하고, 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컨닝에 익숙해진다. 초·중·고 12년, 대학 4년. 총 16년동안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겨우 상대를 이기는 법이었을지 모른다. ‘경쟁을 위해 경쟁한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유다.
우리의 진화는, 우리의 모습은 진보하고 있는가. 탁란(托卵) 하는 뻐꾸기의 모습을 닮은 탁란(濁亂)한 사회의 모습이 필자의 눈에만 보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바야흐로 자기소개서 쓰기 좋은 날씨가 됐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은 경쟁자인가?
이혜주 대학·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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