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법률과 법령을 개선하자는 의견은 매년 한글날을 즈음해 제기돼 왔다. 일본식 법률용어는 일반인들과 법집행 주체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틀의 개정작업은 이뤄지지 않아 현재까지 눈에 띄는 개선은 진전되지 못했다.
 

낯선 표현에 일반인은 ‘갸우뚱’

  법률과 볍령의 조문에 표기된 용어와 표현은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용어와 표현도 많다. 때문에 법률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학교 법률상담소 임승도 씨는 “상담을 하러 오시는 분들 중 낯선 표현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민사재판에서 홀로 소송을 하는 일반인이나, 변호사 없이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성문법에 나오는 용어와 표현뿐만 아니라 법정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와 판결문에도 낯선 용어와 표현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의미가 모호하거나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과 용어는 입법 취지를 인식하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이 경우 후에 법을 집행할 때는 집행하는 기관의 자의적 해석을 초래할 수도 있다.
 

광복 70돌이 코앞이지만 개선속도는 느릿느릿

  이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큰 틀을 바꾸는 개정은 이뤄지지 못했다. 법제처는 2006년부터 ‘알 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통해 법률과 법령에 남아있는 일본식 용어를 고쳐왔다. 하지만 간단한 용어수준의 정비에 그쳤다. 여전히 일본식 표현이 남아있어 법률과 법령의 이해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헌법 △민법 △사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의 일명‘ 기본6법’으로 불리는 법률 중 그나마 변화를 보인 것은 민사 소송법 뿐이다. 지난 1996년 법무부는 ‘민사소송법 개정위원회’를 구성해 한글화를 추진했으며 5년에 걸친 결과물을 2002년 1월 공포해 시행 중이다. 반면 사법 영역에서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몇 차례 열려 일본식 용어와 표현를 청산하고자 했지만 큰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민법 또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느린 개선 속도는‘ 법조계의 오래된 언어 습관’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용어나 표현을 바꾸게 되면 법집행자 사이에 혼란이 생겨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기본법의 경우 조문이 상당히 많다는 점도 장애가 된다.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더라도 국회위원들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04년 국회에 민법을 개정하는 안이 제출됐지만, 4년의 국회 임기기간 동안 심의가 진행되지 않아 폐기된 적이 있다. 민법개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희석(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법은 그 중요성만큼 개정을 하는 데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위기”라며 “민법영역에서 지나치게 낯선 용어의 개선작업은 진행 중이지만 많이 정착된 용어와 표현의 개정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지적, 개선 작업에 진전 보여야

  개정을 진행했을 때 생길 문제들에 대한 우려가 들려오고 있지만, 개정의 필요성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개정된 법률의 경우 상대적으로 한글화가 많이 이뤄졌지만 상대적으로 기본법에 대한 개정은 미비하기 때문이다. 법조문을 우리 문법에 맞는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일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혁(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국민들에게 밀접도가 높은 기본법 영역에서는 괄목할만한 개선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국어학자와 법률학자가 함께 참여해 신중을 기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식된 법률이 크게 바뀌지 못해 자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도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근대적인 법률문화가 일본을 통해 들어오면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법률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종행(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색하고도 난해한 법률용어의 사용은 자생적으로 형성돼 온 것도 아니고 충분한 민의를 반영한 것도 아닌 뼈아픈 역사의 반영”이라며 하루 빨리 기본법과 관련 법령의 개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법제처는 앞으로 법무부와 협의를 통해 민법과 형법 등 기본법에 대한 정비 작업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임상혁 교수는 “법률을 어렵고 낯설게 느끼게 만드는 일본식 표현들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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